Page 92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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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에 ‘이(理)는 용납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 이미 바꿀 수 없는
묘(妙)가 되고, 기(氣)는 뿌리 없이 자생하는 물건이 되어, 같이 생겨
나고 같이 없어지거나, 잠깐 사이에 나타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게
되니, 상천은 주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조화(造化)는 바람 앞의
꽃처럼 전변(轉變)하게 되었으며, 제(齊)나라의 정권이 모조리 전씨
(田氏)에게 귀속되고, 초(楚)나라가 거짓으로 의제(義帝)를 추존했
던 것처럼 되었습니다.
일심(一心)의 천지 만물이 극도로 어긋나고 어지러워졌는데도 바야
흐로 오연(傲然)히 이(理)에 통달한 것처럼 자처하며, 천명을 속이고
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고도 무서워하지 않으니,
털끝만큼의 차이가 나중에 어긋난 것이 어찌 천리(千里)에 그치겠습니
까?
무릇 ‘달리(達理)’라고 말씀하시려면 내면으로 자세하고 곡진(曲盡)
하게 깊은 곳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달리라고 할 수 있습니
제(齊)나라의……귀속되고:제나라 환공(桓公) 때에 진(陳) 여공(厲公)의 아들
전완(田完)이 제나라로 망명하여 환대를 받았는데, 그의 후손인 전상(田常)이 제나
라 간공(簡公)을 시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것을 말한다. 그 후 전상의 증손인 전화
(田和) 때에 이르러 천자의 승인을 받고 정식으로 제후가 되었다.
초(楚)나라가……되었습니다:항우(項羽)의 숙부인 항량(項梁)이 군사를 일으킬
때,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였던 심(心)을 찾아내어 초 회왕으로 받들었고, 그
후 항우가 다시 의제(義帝)로 추존한 다음 강서 지방으로 보내는 도중에 양자강
부근에서 살해한 일을 말한다.
털끝만큼의……그치겠습니까:주희(朱熹)가 《논어(論語)》 〈선진(先進)〉 편의 ‘과
유불급(過猶不及)’에 대한 주에서 “털끝만큼의 차이가 나중에는 천리나 어긋나게
된다.[差之毫釐, 謬以千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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