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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기(形氣)에서 떠난 것이 아니나 가리켜 말한 것이 형기를 범하지

                 않은 자리에 있으니, 이것을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동방에 산과
                 같이 커다란 물건이 나왔다고 해도 역시 본체가 드러난 것이요, 서방에

                 바늘같이 미세한 물건이 나왔다고 해도 역시 본연이 드러난 것입니다.
                 본체 밖에 일호(一毫)도 더한 것이 아니며, 본연 위에 일분(一分)도

                 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응하지 않은 것이 먼저가 아니고, 이미

                 응한 것이 뒤가 아닙니다.  이와 같다면 태극이 과연 오로지 이(理)만
                 을 가리킨 것입니까, 과연 기(氣)를 겸대(兼帶)해서 가리킨 것입니까?

                   이(理)가 추뉴(樞紐)와 근저(根柢)가 되는 것이 과연 기(氣)와 더불
                 어 동행한 데 힘입은 것입니까? 이가 기에 대하여 다만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해서 마침내 먼저 갖춰진 묘(妙)가 없다는 말입니까? 마

                 음을 평정하고 기운을 가라앉힌 다음에 구해 보면 반드시 이 점에 대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태극(太極)의 이치를 일리(一理)라

                 고 해야 됩니까? 만리(萬理)라고 해야 됩니까? 만일 만리라고 한다면
                 개미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처럼 각기 굴혈이 있어서 조각조각 나뉘

                 어져 나오는 것입니까?




                    응하지……아닙니다:《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충막(冲
                    漠)하여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萬象)이 삼연(森然)히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응하
                    지 않았을 때가 먼저가 아니고 이미 응했을 때가 뒤가 아니다. 마치 백 척의 나무가
                    뿌리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관된 것과 같다. 상면(上面)에 한 가지 일이
                    형체도 없고 조짐도 없다가, 사람이 곧바로 안배하여 끌어들이기를 기다려서 도철
                    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니, 이미 도철이면 다만 하나의 도철일 뿐이다.[冲漠無
                    眹,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之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
                    不可道上面一段事, 無形無兆, 却待人旋安排引入來, 敎入塗轍, 旣是塗轍, 却只是一
                    塗轍.]”라고 하였다. ‘도철(塗轍)’은 길과 수레바퀴 자국으로, ‘도리(道理)’나 ‘법칙
                    (法則)’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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