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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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은 만(萬)의 총합이요, ‘만’은 일의 실지입니다. 만을 도외시

             하고 일을 말하며, 일을 도외시하고 만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理)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궐(空闕) 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만리(萬理)
             가 삼연(森然)하다는 말이요, 애초에 봉합(縫合)이 없다고 말하는 것
             은 일리(一理)가 혼연(渾然)하다는 말이니, 사실은 두 가지 일이 아닙

             니다. 하물며 개미와 호랑이 굴혈(掘穴)의 이야기는 그 소견이 가장
             어리석어 말을 하면 사람을 대신 부끄럽게 만듭니다.

               형기(形氣)를 거칠다[粗]고 말하니, 거친 것은 본디 각자의 굴택(窟

             宅)이 있습니다. 도리(道理)를 묘(妙)라고 말하니, 묘 또한 별도로 와
             혈(窩穴)이 있는 것입니까? 개미와 호랑이를 여러 이치에 비유하면,

             이는 도리를 형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일(一)이 두 가지를 함축(涵蓄)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호추(戶
             樞)가 이것입니다. 하나의 호추가 있으면 곧 한번 열리고 한번 닫는

             것을 함축하고 있으니, 호추에 함축한 바가 없다고 해서도 안 되며,
             열고 닫힘에 각기 굴혈(窟穴)이 있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일(一)이 십(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산대 가 이것입니
             다. 하나의 산대가 있으면 곧 1부터 9까지를 함축하고 있으니, 산대가

             함축한 바가 없다고 해서도 안 되며, 1부터 9까지 각기 굴혈이 있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체(體)를 정하고 용(用)을 감추고 있는 묘용(妙用)은 물(物)이 그렇

             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는 특히 보기 쉬운 것일 뿐이니, 이(理)의




                공궐(空闕):결소(缺少) 또는 간격(間隔)의 뜻이다.
                산대:원문의 ‘산정(筭筳)’은 산대 또는 점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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