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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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에게 의지하여 화란을 평정한 것 과 같다고 여기십니까?
형의 ‘이(理)는 기(氣)를 낳지 못한다.’는 말로 살피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형의 ‘태극이 기(氣)를 겸대(兼帶)한다.’는 말로 살피면 아
래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오 척의 키에 조금 영리한 자라면
반드시 그 말이 저열(低劣)하다는 것을 변별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말들이 군더더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렇다고 해도 형께서는 이미 미혹됨이 심하니 대략이나마 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위(名位)가 높은 것은 반드시 내력이 있는
법이니, 경시제(更始帝)는 성(姓)이 유씨(劉氏)였기 때문에 비록 나약
하고 무능했지만 오히려 일시에 존위를 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理)는 성색취미(聲色臭味)가 없고 성한 세력과 기력이 없는데도
존위를 차지한 것은 다만 그것이 만화(萬化)의 추뉴(樞紐)와 품휘(品
彙)의 근저(根柢)가 되는 체용(體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본래 이(理)라는 이름이 없을 것이며, 설사 있다고 해도 이른바 기(氣)
가 기꺼이 윗자리를 양보하고 존위를 돌려주겠습니까?
기(氣)가 존위를 돌려주지 않는데 성인께서 억지로 높인다면 이것이
과연 말 속에 내용이 있는 도리이겠습니까? 또한 남의 공로를 빼앗아
정권을 잡은 일을 말한다. 장안(長安)으로 천도한 후에도 횡포가 심하여 사도(司
徒) 왕윤(王允)의 모략에 걸려 부장 여포(呂布)에게 살해되었다.
조조(曹操)에게……것:조조가 헌제의 후견인을 자청하여 헌제의 명의로 각종 조
칙을 반포하고 제후들을 호령하며 후한의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일을 말한다.
말 속에……있는:원문의 ‘언유물(言有物)’은 말 속에 내용이 있어 공허하지 않다는
뜻이다. 《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 상(象)에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 것이
가인(家人)이니, 군자가 말에 실제 내용이 있고 행실에 변치 않는 법도가 있게 한
다.[風自火出, 家人, 君子以, 言有物而行有恒.]”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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