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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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周子)는 말단처부터 차례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오행이 하나

             의 음양이며, (오행은) 하나의 태극이다.” 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또한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괘

             를 그리기 전이지만 이(理)가 먼저 나타난 것이며, 물(物)이 생기기
             전이지만 이가 먼저 갖추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전자에 제가 논한

             뜻입니다.
               대저 이 이(理)가 있어야 비로소 이 물이 있는 것이니, 이가 비록

             권세를 기(氣)에게 맡겼다고 해도 기는 실제로 이에게 명을 받는 것입

             니다. 마치 사람이 빨리 가고 천천히 가는 것이 비록 말에 달렸다고
             해도 말이 천천히 가고 빨리 가는 것은 실제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존형의 말씀은 마치 사람이 문을 나설 때 정해진 방향이 없이 발걸음
             에 의지하고 지팡이에 내맡겨, 분주하고 방황하며 평탄한 길이나 가시

             밭길을 똑같이 가기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다면 ‘물 긷고 나무

             를 운반하는 일[運水搬柴]’ 이 모두가 묘용인 셈이니, ‘솔개가 물에서

             뛰놀고 고기가 하늘에서 난다.[鳶躍魚飛]’ 라고 해도 무엇이 불가하겠



                오행이……태극이다: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오행은 한 음양
                이요, 음양은 한 태극이니,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
                也. 太極, 本無極也.]”라고 하였다.
                물 긷고……일:불법의 수행은 일상생활에 있다는 말이다. 마조선사가 방거사(龐居
                士) 방온(龐蘊)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자, 방거사가 게송(偈頌)을 지어 답하
                기를 “날마다 하는 일이 별 다름이 없으니, 내 스스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네.
                취할 것 취하고 버릴 것 버리고, 과장하지도 말고 어긋나게 하지도 말라. 붉은빛
                자줏빛 분별하는 이 누구인가, 언덕과 산더미에 티끌 하나 없네. 신통과 묘용을 겸한
                것, 바로 먹을 물과 땔나무를 운반하는 것이네.[日日事無別, 惟吾自偶諧. 頭頭非取
                捨, 處處勿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絶塵埃. 神通倂妙用, 運水及搬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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