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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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반드시 하나의 형상(形狀)과 명목(名目)을 취하여 두루 망라하고

             포괄하는 도구로 삼으려 합니까?
               형께서는 매양 지정(至精)과 지묘(至妙)와 묘묘(妙妙) 등의 말로

             이 이(理)의 묘함을 찬탄하시지만, 그 실상을 세밀히 고찰해 보면 다만
             천지 만물이 똑같은 생생(生生)이니, 나누면 만 개의 생생이요 합하면

             한 개의 생생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어찌 일찍이 단적(端的, 뚜렷함)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화(萬化)가 생생에서 나온다는 것을 어느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만, 다만 ‘일원(一源)’이라고만 논하면 안 되

             는 것입니다.
               대개 이(理)가 만 가지로 다른 것을 모두 이름 지을 수 있으며, 이름


             을 지은 뒤에는 말을 할 수도 있으니, ‘원형이정(元亨利貞)’ 이 그것입
             니다. 말을 했으면 또한 행할 수 있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그것
             입니다.

               오직 일원만은 이름과 말로 미칠 수 없는 것이기에 부자[孔子]께서
             억지로 ‘태극(太極)’이라고 명명한 뒤로 아무도 감히 그 위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던 것을 오직 주렴계(周濂溪)가 ‘무극(無極)’이란 두 글자로
             풀이했을 뿐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이 있음에 미쳐서는 원래 음양

             오행의 이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만사만물이 있음에 미쳐서는 원래

             만사만물의 이치가 있음을 안 것입니다. 이런 실리(實理)가 있기 때문
             에 유행하고 드러나서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원형이정(元亨利貞):《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건(乾)의 네 가지 원리이다. 원
                (元)은 만물의 시(始)로 춘(春)에 속하고 인(仁)이며, 형(亨)은 만물의 장(長)으
                로 하(夏)에 속하고 예(禮)이며, 이(利)는 만물의 수(遂)로 추(秋)에 속하고 의
                (義)이며, 정(貞)은 만물의 성(成)으로 동(冬)에 속하고 지(智)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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