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답문류편
P. 70
生生二字, 可以盡一原之妙, 可以通萬理之殊云云。【權宇仁】
[답] 무릇 천하의 이치는 나뉘어 달라지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지,
상통(相通)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천하의 다름
[異]을 극진히 하면 자연히 천하의 같음[同]으로 합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릇 남의 선(善)을 상 주는 자는 반드시 남의 악(惡)을 벌
하는 것이요, 남의 근심[憂]을 근심해 주는 자는 반드시 남의 즐거
움[樂]도 즐거워해 주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정(情)이 같지 않은
것이 희(喜)·노(怒)·우(憂)·락(樂) 같은 것이 없지만, 이것에 능한
자는 반드시 저것에도 능한 것이니, 그 이(理)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안배하기를 기다려서 같아진 것이 아니요, 또한 생생
(生生)을 동일하게 한다고 해서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천연의
면목이니 비록 다르게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말하자면 희·노·우·락이 동정(同情)이요 만난 바의 사람
에 달려 있을 뿐이며, 수(水)·화(火)·금(金)·목(木)이 일리(一理)요
타고 있는 기틀에 달려 있을 뿐이니, 만사만물이 또 어디를 간들 그렇
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이통(理通)’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것이요:상선벌악(賞善罰惡). 《시경(詩經)》 〈소아(小雅)〉 ‘첨피락의(瞻
彼洛矣)’의 주(註)에 “첨피락의는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이니, 옛날의 명왕(明王)
이 제후들에게 관작을 명하여 상선벌악함을 생각한 것이다.[瞻彼洛矣, 刺幽王也,
思古明王, 能爵命諸侯, 賞善罰惡焉.]”라고 하였다.
남의……때문입니다:《소학(小學)》 〈가언(嘉言)〉에 “두계량이 호협하고 의를 좋
아하여 남의 근심을 걱정하고 남의 즐거움을 즐거워하여, 맑고 탁한 것에 내버려두
는 일이 없었다.[杜季良豪俠好義, 憂人之憂, 樂人之樂, 淸濁無所失.]”라고 하였다.
이통(理通):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이통설(理通說)〉은 권우인(權宇仁)
이 율곡(栗谷)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잘못 이해하여 그 본지(本旨)를 어지
70 답문류편 권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