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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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삼라만상의 이(理)가 이미 변합(變合) 하기 전에 갖추어졌다
는 사실은 알지 못하니, 이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얼굴은 잊어버
리고, 달빛 아래를 거닐며 자신의 그림자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무릇 형이 인용한 주자의 말씀에 선후가 없다는 곳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후가 있다고 말한 곳은 또 마땅히 어디에
두실 것입니까? 곧게 보면 봉우리가 된다는 말에만 집착하여 옆으로
보면 고개가 된다는 말을 폐하려고 하니, 어찌 우물 속에서 본 몇
개의 별만 가지고 하늘을 덮고 있는 전체의 천문도(天文圖)를 폐하려
고 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충막무짐(沖漠無眹)’ 한 대목에서 정자(程子)의 본래 말이 만약
단지 ‘충막무짐 만상삼연(冲漠無眹萬象森然)’ 여덟 자만 있고 아래의
글이 전혀 없다면, 형이 비록 억지로 ‘상인(相因)’이라는 한 뜻을 쪼개
서 대우(對偶)의 쌍각(雙脚)으로 간주하여, 하나는 체(體)이고 하나는
용(用)이며, 하나는 합(合)이고 하나는 이(離)라고 여기신다면, 진실
로 속일 수 있는 방법이 되고 밝히기 어려운 상황은 될 수 있습니다.
변합(變合):주희가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양이 동하면
음이 따르므로, 변하고 합했다고 말한 것이다.[陽動而陰隨之, 故云變合.]”라고 하
였다.
곧게……하니:소식(蘇軾)의 〈제서림벽(題西林壁)〉 시에 “옆으로 보면 잿마루요
비스듬히 보면 봉우리가 되니, 원근과 고저에 따라 모습이 같지 않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橫看成嶺側成峯, 遠近高
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라고 하였다.
충막무짐(沖漠無朕):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상태로, 본연(本然)의
성(性)을 표현한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 사람의 성(性)에 이(理)가 본래 갖추어
져 있음을 말하여 “충막무짐한 가운데 만상(萬象)이 빼곡히 갖추어져 있다.”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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