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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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이 여덟 자 아래 곧바로 ‘이구(已具)’란
두 글자가 있습니다.
‘이미 갖추었다[已具]’라고 하는 것은 ‘아직 있지 않다[未有]’란 두
글자의 안산(案山) 입니다. 만상(萬象)의 기(氣)가 있기 전에 이미
만상의 이(理)가 있으므로 ‘이구’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형의 말대로라
면 비록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의 혀를 빌린다 해도 어떻게 ‘이구’
두 글자를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성(性)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몸에 이미 귀와 코와 입과 손발
이 있으니, 이러한 이(理)를 가지고 기(氣)를 겸하여 말했다고 한다면,
실로 밝히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산천초목과 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 등의 기가 없으니, 만약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만리(萬理)가 모두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떻게 만물(萬物)이 모두 갖추어졌다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所謂理先具者, 非謂先有懸空之理也。 自萬象而言, 則未有萬象,
已有萬象之理。 自二五而言, 則未有二五, 已有二五之理。 自天地
안산(案山):풍수학상 집터나 묏자리 혈의 맞은편에 있는 작은 산을 말하는데, 주
작(朱雀)에 해당된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모두 전국(戰國) 시대의 변론가로서 귀곡자(鬼谷子)의
제자이다. 소진이 주장한 합종술(合縱術)은 산동(山東) 육국(六國)이 힘을 합하여
진(秦)나라를 막자는 것이고, 장의가 주장한 연횡술(連橫術)은 육국을 설득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만물이 모두 갖추어졌다:《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 정성스럽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
이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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