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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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분간이 있어서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으며, 지나쳐서도
안 되고 미치지 못해도 안 되니, 학(學)이란 이를 밝히는 것이요, 도
(道)란 이를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형의 말처럼 단순하게 ‘원만하게 통하여 얽매이지 않을[圓通
不拘]’ 뿐이라면 말에 소뿔이 날 수도 있고 복숭아나무에 오얏꽃이 필
수도 있으며, 겨울에 갈포를 입을 수도 있고 여름에 가죽옷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니, 천하 사람들을 이끌어서 천리에 재앙을 끼치는 것은
반드시 이 말일 것입니다.
또한 형의 이 말에 제가 실로 의혹이 있으니, 형께서는 이미 ‘일본(一
本)이 만수(萬殊)를 포함하고 있다.’ 라는 말을 배척하여 그것을 태극
의 분편(分片)이라고 여기는 것인데, 저와 같을 수도 있고 또한 이와
같을 수도 있다는 말이 어찌하여 형에게서 나오는 것입니까?
무릇 이와 같을 수도 있고 또한 저와 같을 수도 있다면 이는 두 조각
이며, 이와 같은 것이 오천(五千)에 그치지 않고 저와 같은 것이 오천
에 그치지 않는다면 이는 만 가지 조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얻어서 이것이 되고, 저와 같을
수 있기 때문에 저것이 얻어서 저것이 되니, 이것은 범은 범의 굴에서
단순하게:원문의 ‘일미(一味)’는 줄곧, 단순하게의 뜻이다.
일본(一本)이……있다:원문의 ‘만수일본(萬殊一本)’이란 현상은 만 가지로 다르
지만 그 현상이 있게 된 근본은 하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서경(書經)》 〈함유일
덕(咸有一德)〉에 “덕에는 일정한 법이 없어 선을 주로 하는 것이 법이 되며, 선에는
일정한 기준이 없어 한결같으면 이에 합치된다.[德無常師, 主善爲師. 善無常主,
協于克一.]”라고 하였는데, 그 집전(集傳)에 “덕은 여러 선(善)을 겸하였으니 선을
주장하지 않으면 일본만수의 이치를 얻을 수 없고, 선은 일(一)에 근원하였으니
일에 합하지 않으면 만수일본의 묘리를 통달할 수 없다.[德兼衆善, 不主於善, 則無
以得一本萬殊之理. 善原於一, 不協于一, 則無以達萬殊一本之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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