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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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은 기(氣)를 겸대(兼帶)하는 물(物)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이에
태극이 잡탕 국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릇 분개(分開)한 말이 공맹정주(孔孟程朱)에게 나왔다면 이를 주
석하고 풀이하여 억지로 자신의 견해로 취하며, 그 말이 동유(東儒)에
게 나왔다면 헐뜯고 배척하며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자신의 학설만 높
입니다.
또한 이 형(形)이 한정되어 만화(萬化)의 종조(宗祖)가 될 수 없다
고 보고 승기변화(乘機變化) 의 설로써 통(通)하게 하니, 이에 하나의
태극이 머리를 고치고 얼굴을 바꿔 기(氣)에 붙어 있는 가련한 물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릇 음을 낳고 양을 낳는 것을 태극이 겸대(兼帶)하고 있는 기(氣)
에게 완전히 부여하고 이(理)는 간여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이(理)의 묘용을 형용한다는 것이 ‘원통불구(圓通不拘)’ 네 글자
에 불과하니, 이에 하나의 태극은 푹 삶은 사슴가죽 이 되어 버렸고,
다만 ‘불상리(不相離)의 형(形)’만 있고 ‘불상잡(不相雜)의 묘(妙)’는
원래부터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氣)가 소멸할 때 이(理)도
으나, 원문에 따라 ‘기이성형(氣以成形)’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승기변화(乘機變化):‘승기(乘機)’는 소승지기(所乘之機)이다. 주희는 〈태극도설
해(太極圖說解)〉에서 “태극은 본연의 묘용이요, 동정은 타는 바의 기틀이다.[太極
者本然之妙, 動靜者所乘之機.]”라고 하였다.
푹 삶은 사슴가죽:원문의 ‘숙록피(熟鹿皮)’는 원래 사슴가죽[鹿皮]을 무두질하여
더욱 부드럽게 만든 최상품 가죽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숙록피왈자(熟鹿皮曰字)’
의 생략이다. 잡아당기는 쪽으로 늘어나서 ‘왈(曰)’ 자가 ‘일(日)’ 자로도 되고 반대
로 ‘일(日)’ 자가 ‘왈(曰)’ 자로도 되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해할 수 있거나,
자기 마음대로 풀이함을 말한다.
불상리(不相離)의……되었습니다:주희가 《맹자집주(孟子集註)》 〈고자 상(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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