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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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를 부리고 이를 어지럽히며,  기어코 뒤죽박죽하게 만든 뒤에야
             마음으로 기뻐하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그 병통이 된 근원은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당초에 사리를 살피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나 그 문(門)을 얻어 들어가지 못하고, 만물의 산수

             (散殊) 를 모르고서 곧바로 일원(一源)만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통

             체일태극(統體一太極)’ 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덩어리의 물사(物事)를 보기를 구하였으나, 위로 높은

             하늘과 아래로 구천에 이르기까지 이 물사를 볼 수가 없자 부자(夫子)


             께서 말씀하신 형(形) 자를 여기에 해당시켰습니다.  형(形)이란 곧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理)가 또한 부여된 것 입니다. 때문에



               억지를……어지럽히며:원문의 ‘억륵(抑勒)’은 이치나 조건에 맞지 않게 강제하다
               또는 억지를 부린다는 뜻이고, ‘골진(汩陳)’은 어지럽히는 것이다. 《서경(書經)》 〈주
               서(周書)〉 ‘홍범(洪範)’에 “옛날에 곤(鯤)이 홍수를 막다가 오행의 순서를 어지럽혔
               다.[在昔鯀陻洪水, 汩陳其五行.]”라고 하였다.
               만물의 산수(散殊):원문의 ‘산수’는 만물이 흩어져 다르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하늘은 높고 땅은 낮기 때문에, 만물이 각기 흩어져 다르다.[天高地
               下, 萬物散殊.]”라고 하였다.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만물이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다. ‘통체(統體)’는 총체(摠
               體) 혹은 전체(全體)와 같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대개 합해서
               말하면 만물이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요, 나누어 말하면 일물이 각기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다.[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라는
               주희의 말이 나온다.
                부자(夫子)께서……해당시켰습니다:《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형
                이상의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하였다.
                기(氣)로써……것:《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의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고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경문에 대해, 주희가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
                하니, 기(氣)로 형체를 이루고 이(理) 또한 부여한다.[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
                成形, 理亦賦焉.]”라고 해설하였다. 《답문류편》에는 ‘기이성(氣以成)’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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