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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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기력을 내어서 발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조화가 본래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이 무엇 때문에 일 없는 가운데 일을 만들고,
나눌 수 없는 곳에서 나누어 설파하여, ‘형(形)’ 자 앞에 반드시 ‘이상
(而上)’이라는 글자를 붙여 도(道)라 하고, ‘이하(而下)’라는 글자를
붙여 기(器)라고 했겠습니까?
이는 바로 성인께서 후세에 전하는 가르침을 세우기 위해 크게 고심
하여 힘을 다하신 곳이니, 군서군경(群書群經)에서 비록 표현한 바가
같지 않으나 그 내용은 이 뜻이 아님이 없습니다.
후세의 학자들은 다만 성인께서 이루어 놓은 설에 의거하여 대목마
다 맹렬히 정신을 차리고 상하를 분명하게 절단하여 오래도록 하여
안목이 원활해지면, 자연히 이 물사(物事)가 지극히 허(虛)하면서도
지극히 실(實)하고, 지극히 무(無)하면서도 지극히 유(有)하여, 능히
음양(陰陽)·오행(五行)·만물(萬物)의 조종이 되고, 실로 음양·오행·만
물의 가운데 운행됨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일리(一理)라고 해서 빠뜨린 것이 없는데 어찌 만리(萬理)라고 하여
더해진 것이 있을 것이며, 이 물(物)이 있어서 처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이 물이 없다고 해서 따라서 없어지겠습니까?
이와 같아야 비로소 성인께서 가르침을 내리신 뜻을 저버리지 않는
것인데, 노형께서는 홀로 성인이 힘써 분개(分開)하신 말씀을 취하여
후세에……위해:원문의 ‘수세입교(垂世立敎)’는 《예기집설서(禮記集說序)》에 나
오는 말이다. “전대의 성인(聖人)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도(道) 가운데
예(禮)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후대의 성인이 후세에 전하려고 가르침을 세운 책 중에
서 또한 예서(禮書)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前聖繼天立極之道, 莫大於禮, 後聖垂世
立敎之書, 亦莫先於禮.]”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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