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9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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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외치며 계속 상소하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박해량-
勉庵崔公, 首斥和議, 而今蒙重譴, 方欲與諸同志, 呌閽繼疏云云。
【朴海量】
[답] 이것은 5백 년 동안 양사(養士)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성대하고 성대하도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은 각자가 다른 것이니, 오
직 스스로 생각해서 용단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내가 말하
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공자께서 진항(陳恒)을 토벌하길 청하신 후
에 10철(哲) 중에 어찌하여 한 사람도 이어서 일어나 토벌하기를 청
한 자가 없었던가? 대개 말할 만한 처지에 있어서 말할 만한 데도 말
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데도 말을 하는 것은 똑같이 중도가 되
지 않는다. 족하가 최장(崔丈)의 문하에 출입하는 것은 나라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니 오늘 이 상소는 혹 일에는 무익하기만 하고 일의
체면에는 해로움이 있는 건 아니겠는가?
면암……입었습니다:1876년 1월에 왜선(倭船)이 강화도에 와서 수호(修好)와 통
상(通商)을 요구하자, 홍재귀(洪在龜), 유기일(柳基一), 유인석(柳麟錫) 등과 함
께 광화문 앞에 엎드려 왜인의 요구를 물리칠 것을 상소하였는데, 상소의 내용이
임금을 무함하고 매도했다고 하여 흑산도에 위리안치된 것을 말한다. 이때 박해량
이 화공을 데려가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박해량(朴海量):1850∼1886. 자는 도겸(道謙), 호는 율수재(聿修齎), 본관은 순
천(順天)이다. 임헌회(任憲晦), 최익현,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76년
(고종13)에는 채용신을 데리고 흑산도에 유배된 최익현을 찾아가서 초상을 그리게
하여 본가로 보냈다. 유집에 《율수재유고(聿修齋遺稿)》가 있다.
진항(陳恒)을 토벌하길 청하신:《논어(論語)》 〈헌문(憲問)〉에 “공자께서 목욕하
고 조회하시어 애공(哀公)에게 아뢰셨다. ‘진항이 그 군주를 시해하였으니, 토벌하
소서.’[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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