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7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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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구설을 면하지 못했습니다.-정사원-
鄙先祖, 嘗赴義幕爲軍官, 不免俗輩多口。【鄭士源】
[답] 그대 선조의 유적 일은 모두 그대로 놔두고 변론을 안 하는 것
만 못한 것 같다. 왜 그런가? ‘군관’이라는 두 글자로 혐의를 삼는 것
이 본래 세간의 정이니, 사실은 조금도 편안치 못할 것이 없다. 유사
(儒士)는 군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평상시의 일이지만, 만약 사태
가 창졸지간에 있다면 즉시 유건(儒巾)을 벗고 전립(戰笠)을 쓰고서
천총·파총 관할의 군사가 될 것이니, 이것이 무엇이 불가할 것이 있
겠는가?
하물며 백부지장(百夫之長)이란 것은 평시에 인망이 있는 자가 아니
면 비록 구할지라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이 평정된 뒤에는 유건
이 다시 그 유건으로 돌아가니, 연루되거나 서로 연좌될 이치가 만무한
것이다. 설사 많은 구설수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무식해서 그런 것이니,
어찌 더불어 계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른바 변론을 하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이다.
尊先遺蹟事, 都不若置之無辨。 何者? 以兩字爲嫌者, 本一俗情,
其實少無未安。 儒士不爲軍官者, 是平時事, 若事有倉卒, 卽脫儒
巾而戴戰笠, 爲千把總管下軍兵, 何不可之有? 况百夫之長, 非平
정사원(鄭士源):1828~?. 자는 도심(道心), 호는 경암(敬庵), 본관은 진주(晉
州)이다. 노사의 문인으로, 무장에서 살았다.
계교:원문에는 계교(計校)로 나온 것을 계교(計較)로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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