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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於義, 何害之有? 敢乞指敎, 幷付辭疏, 以破昏見如何?【閔在南】



                 [답]  고을 수령으로 제수받고 부임하지 않은 것은 이미 지난 일이니

                 족히 뒤늦게 거론할 것이 없고, 말씀해 오신 바는 모두 합당치 않습
                 니다. 저[正鎭]도 본래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을 구하던 사람입니다.

                 당초의 뜻이 어찌 승두(升斗)의 관록을 구하지 않았겠습니까마는,
                 다만 자신의 성격이 본시 소활(疎闊)했고 학문도 우활하고 막혀서,

                 세무(世務)와 인정에 종시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는 정력마저 고갈되어 건
                 망증이 고질화되었으니, 이미 망가진 그릇이나 깨진 물건이 되어 버

                 렸습니다.

                   그 부서(簿書)나 기회(期會)  등에 대해서는 진실로 관령(管領)이
                 이르지 못할 곳이 있으니, 비록 본래 관직에서 일하고 있던 자라도

                 이 지경이 되었다면 마땅히 사직을 하고 한가한 데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비록 따르고자 해도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


                 다.’ 라는 것입니다.



                    부서(簿書)나 기회(期會):‘부서’는 장부를 정리하는 일이고, ‘기회’는 규정된 기한
                    안에 정령(政令)을 실시하는 일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77 〈왕길전(王吉傳)〉에
                    “그들이 힘쓰는 것은 기한 안에 재물을 출납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일과 옥사를 처결
                    하는 일뿐인데, 이는 태평 정치의 기반이 아니다.[務在於期會簿書, 斷獄聽訟而已,
                    此非太平之基也.]”라고 하였다.
                    비록……모르겠다:《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안연(顔淵)이 공자의 도에 대
                    해 탄식하여 이르기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부자의 도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
                    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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