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9 - 답문류편
P. 469

때를 말할 뿐이요, 생경(生梗)한 것을 억지로 파고 벼랑 모서리를 억지

                 로 만들어서, 마치 주사(主司) 가 과거 마당에 들어온 제생(諸生)들을
                 시험 보듯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의심할 줄 아는 것은 의심이

                 없는 것만 못하다.
                   천하의 온갖 물건이 모두 소리와 빛과 모습과 형상이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 나의 일신으로 말하자면, 밖으로
                 면목발부(面目髮膚)가 있는 것에서부터 안으로 온갖 뼈와 오장이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오직 성(性)만은 알 수가 없으



                 니, 사광(師曠) 이라도 들을 수가 없고 이루(離婁) 라도 볼 수가 없
                 다. 그렇다면 비록 천하에 본래 이 물건이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도리어 성현이 말씀하셨으니, 어찌 본래 이 물건이

                 없었던 것을 성현이 억지로 파내어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이



                    주사(主司):과거의 시관(試官)을 말한다.
                    사광(師曠):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악사(樂師). 음조(音調)를 잘 알아서 한번
                    들으면 길흉을 알았다고 한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사광지총(師曠
                    之聰)’이란 말이 나온다.
                    이루(離婁):중국 황제(黃帝) 때 사람으로 눈이 매우 밝았다고 전한다. 《맹자(孟
                    子)》 〈이루 상(離婁上)〉에 맹자가 말하기를 “이루의 밝은 눈과 공수자(公輸子)의
                    정교한 솜씨로도 그림쇠와 곱자를 이용하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그릴 수 없고, 사광
                    (師曠)의 밝은 귀로도 육률(六律)을 이용하지 않으면 오음(五音)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요순(堯舜)의 도를 알더라도 인정(仁政)을 펴지 않으면 천하를 균등하게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不以規矩, 不能成方員. 師曠之聰, 不以六律, 不能正五音.
                    堯舜之道, 不以仁政, 不能平治天下.]”라고 하였다.
                    억지로 파내어:원문의 ‘착공(鑿空)’은 ‘착공가허(鑿空架虛)’의 준말로,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며 억지로 끌어대는 일을 말한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4 〈관성
                    현(觀聖賢)〉에 “예를 들어 [한퇴지(韓退之)가] ‘맹가(孟軻)가 죽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말은 앞사람을 답습한 것이 아니요 또 공론(空
                    論)을 일삼아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반드시 본 바가 있었을 것이니, 만약



                                                                           469
   464   465   466   467   468   469   470   471   472   473   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