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5 - 답문류편
P. 465
익숙한 것은 저기에 있거늘 熟處在彼
혹 명리를 탐해서 或貪名利
아버지는 가르치고 형은 권면하니 父敎兄勉
탄환을 보면 뜻이 바쁘고 見彈意忙
항아리 헤아리며 마음이 옮겨 가네 筭甕情轉
주머니가 작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褚小綆短
마땅히 얻는 것이 작을 수밖에 宜得之淺
혹 작은 기예[小數]로 或有小數
게로 돌아가고 양주에게서 도피하면 반드시 유가로 돌아오니, 돌아오면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양주 묵적과 변론하는 이들은 마치 도망친 돼지를 쫓는 것같이
하여 이미 우리로 들어왔는데도 다시 발을 묶어 놓는다.[逃墨, 必歸於楊, 逃楊,
必歸於儒, 歸斯受之而已矣. 今之與楊墨辯者, 如追放豚, 旣入其苙, 又從而招之.]”
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익숙한……있거늘:학문의 도리는 익히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오곡은 종자의 아름다운 것이지만 만일 익지 않으면 피만도 못하니,
인(仁) 또한 그것을 익숙히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五穀者, 種之美者也. 苟爲不熟,
不如荑稗. 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라는 말이 보인다.
탄환을……바쁘고:원문의 ‘견탄(見彈)’으로,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계란을 보고는 벌써 새벽에 울어 줄 것을 요구하며, 탄환을 보고는 올빼미 구이를
생각한다.[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鴞炙.]”라는 말이 있다.
항아리……가네:원문의 ‘산옹(筭甕)’은 옹산(甕算) 혹은 산옹(算甕)이라고도 한
다. 항아리를 계산한다는 뜻으로, 대단한 생각인 것처럼 혼자서 멋대로 망상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 항아리 하나를 애지중지하며 밤에도 끌어안
고 자곤 하다가, 어느 날 저녁에 항아리 하나를 밑천 삼아 계속 재물이 불어나면서
부자가 되리라는 생각에 젖은 나머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다가 그 항아리를 밟아
깨뜨려 버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事文類聚 前集 卷36》
주머니가……짧으면:재능이나 식견이 부족해서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주머니가 작으면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
以汲深.]”라는 말이 있다.
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