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답문류편
P. 38
이다. 배우는 자가 진실로 능히 원집에 근본하여 그 요체를 얻고, 《답
문류편》을 참조하여 그 단서를 궁구한다면, 입덕(入德)의 문과 진도
(進道)의 단계가 실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 《답문류편》
이 도를 전하는 데 있어서 어찌 보탬이 적을 것인가!
나 양연(陽衍) 은 본디 문장이 짧은 데다 또 노쇠하고 혼몽하여 진
실로 이 일에 참여할 수 없거늘 하물며 감히 현안(玄晏) 을 자처하겠
는가? 다만 이 유편에 이름을 의탁하는 것이 비록 분수에는 넘치지만,
명예를 헤아려 보면 깊기 때문에 외람됨을 무릅쓰고 끝내 사양할 수
없었다.
신묘년(1891) 5월, 문인 행주(幸州) 기양연(奇陽衍)이 삼가 쓰다.
聖賢之生也, 道在聖賢身上, 其沒也道之不墜, 惟言語文字是賴。
我蘆沙先生, 易簀不多年, 原集刊行, 又不多年, 《答問類編》出焉。
嗚呼! 先生之道, 其將永世無墜乎。 蓋先生之門多高弟, 又有肖孫宇
양연(陽衍):기양연(奇陽衍, 1827~1895)을 말한다. 초명은 행연(行衍), 자는 자
민(子敏), 호는 백석(柏石),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윤
진(奇允鎭), 어머니는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생원 박종한(朴宗漢)의 딸이다. 기
정진(奇正鎭)의 조카로,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7년(고종4)에 문과에 급제
한 후 전적·정언·예조 정랑을 지냈다. 이듬해에 지평, 1869년 장령, 1873년 사복시
정(司僕侍正)을 지내고,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집상하였다. 1878년 다
시 장령을 거쳐 부교리·부수찬을 역임하였다. 유고에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
2권 1책이 있다.
현안(玄晏):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진(晉)나라 은사 황보밀은 농사지으면서
고상한 뜻을 지니고 학문에 종사하였는데, 무제(武帝) 때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끝내 벼슬하지 않았다. 일찍이 좌사(左思)를 위해 〈삼도부(三都賦)〉의 서문을 써
주자 낙양(洛陽)의 지가(紙價)가 뛰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서문을 쓸 수 없다는
겸손의 말이다.
38 답문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