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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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나아가려는 마음이 담담해졌다면 그 또한 길사(吉士, 현인)가 되

             는 데 해가 없습니다.

               만약 가슴에 옥을 품고 손에 옥을 쥐고서  진퇴를 예대로 하는 자라
             면 결코 정문(程文, 科文)을 지어 남에게 자랑할 이치가 없으니, 이는
             가장 상등을 가는 사람으로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기나 여기에

             힘을 헤아려 그중 하나를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몇 가지에 해당되

             지도 않으면서 과거 공부를 완전히 폐하려 한다면 재지(載贄) 의 의리
             가 아닌 것으로 이른바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리가 없는 것이다[不仕無


             義]’ 는 말에 해당되는 것이니,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율곡의 말씀은 《격몽요결》에 나타나 있으니, 이것이 평탄한

             것입니다. 문안에 도적이라고 한 것은 유속(流俗)의 폐단이 실로 그러

             한 것이니, 이 도적을 다스리는 방법은 다만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힘이 있으면, 속은 무거워지고 밖은 가벼워지는 것이 차례의 일입니다.

             비록 유예(遊藝) 하는 여가에 때때로 과문(科文)을 공부하는 것은 혹





                가슴에……쥐고서:유(瑜)는 미옥(美玉)을 가리킨다. 악유(握瑜)는 훌륭한 자질
                을 가졌음을 비유한다. 《초사(楚辭)》 〈구장(九章)〉 ‘회사(懷沙)’에 “가슴에 옥을
                품고 손에 옥을 쥐고서도, 곤궁하여 보여 줄 길 전혀 없네.[懷瑾握瑜兮, 窮不知所
                示.]”라고 하였다.
                재지(載贄):재질(載質). 예물을 가지고 벼슬을 급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맹자
                (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서 “공자가 석 달 동안 임금이 없으면 어찌할
                줄을 모르다시피하여 국경을 떠나갈 적에 반드시 폐백을 싣고 갔다.[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出疆必載質]”라고 하였다.
                벼슬하지……것이다:《논어(論語)》 〈미자(微子)〉에 나온 말이다.
                유예(遊藝):유어예(遊於藝).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공자가 말하기를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어야 한다.’라고 하였다.[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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