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1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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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탈쇄를 말하는 것은 궁리존성(竆理存誠)을 말함만 못하다.
전번에는 어찌해서 이 말을 제기했을까? 대저 일보를 걸어가도 눈이
발보다 먼저 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제 내 발이 비록 이런 지경에
이르지 못했으나 눈이 능히 먼저 이런 지경이 있음을 알았으니, 또한
가슴이 열리고 트이게 하여 학문의 경지가 막힘이 없는 수준이 된다.
나의 생각이 당시에 혹 여기에서 나왔겠지? 만약 혹 마음속에 ‘탈쇄’라
는 두 글자 두기를 마치 불자(佛者)가 화두(話頭)를 보듯이 한다면,
나는 끝에 가서 얻은 것이 바로 소활(踈闊)이지, 탈쇄가 아닐까 두렵다.
脫灑者, 汩沒之反也。 著手脚超然, 外物自然惹絆不得, 則脫灑也。
己身雜於物累之中, 日與廝殺, 雖僅能保其疆土, 心與力俱疲矣。
此未免汩沒, 脫灑豈非所願欲, 而致此脫灑, 必有本矣。 惟理明義
精, 洞見大原, 兼以持守純固然後, 實踐是境, 非希望造作之所可
得也。 然則言脫灑, 不如言竆理存誠。 曩時何爲而有此提起也? 蓋
一步之行, 未有不眼先於足者, 今吾足雖未到此境, 眼能先知有此
境, 則亦足令胷次開豁, 地步展拓。 鄙意當時或出於此耶? 若或心
中留著脫灑二字, 如佛者看話頭樣, 則吾恐下梢所得, 乃踈闊而非
脫灑。
[문] 깨달았을 때 안락하고 얻었을 때 화평한 것 같습니다. 어떻습
니까?-우기주-
覺處樂得時和云云。【禹琪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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