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2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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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友年紀, 未可不謂之莫大, 他人書劒到此而不中廢者鮮矣。 吾友
乃獨有孤軍向敵, 有去無廻底志氣, 只此一氣字, 不論金石堅頑,
皆被透過。 况吾所尋求, 自有一條路脈。 非金石無孔穴之比。 但從
此加勉, 無憂其無成也。 朋來之樂, 或以妨工, 此爲可慮。 然拔毛
不爲, 吾儒無此法門, 亦將如之何哉。
[문] 사는 곳이 편벽되어 사우(士友)와 강습하는 유익함이 없고, 타
고난 자질이 혼우(昏愚)하여 또한 정밀한 생각으로 깨닫는 묘함이 없
습니다. 약간의 본 글자도 다만 헛되이 천착하여, 마침내 허공에 매
달린 빈말과 같습니다. 손을 쓰고 땅에 발을 붙이는 데 있어 전혀 길
이 어두우니, 순순한 가르침을 내려 주셔서 종신토록 가슴에 간직하
는 밑천으로 삼게 해 주십시오.-이희용-
居地僻陋, 無士友講習之益, 賦質昏愚, 又無精思契悟之妙。 如干
看字, 徒費穿鑿, 而終如懸空說話。 下手著跟, 全昧蹊徑, 乞下諄
諄之諭, 以爲終身佩服之資。【李熙容】
[답] 다른 일은 논할 것도 없고, 다만 ‘하수착근(下手著跟)’ 네 자가
내 뜻에 매우 좋은데, 국서(國瑞)는 어디에서 얻어 왔는가? 진실로
이희용(李熙容):1853~1931. 자는 국서(國瑞), 호는 쌍석(雙石), 본관은 전의(全
義)이다. 광주 흑석동에서 출생했다. 1874년(고종11) 약관에 노사(蘆沙)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노사 선생 사후에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모셨다. 정원
앞에 쌍석정(雙石亭)을 세워 여기에서 고광선(高光善), 박노술(朴魯述), 오준선
(吳駿善), 기재(奇宰), 기우승(奇宇承) 등과 도의지교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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