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0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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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엎드려 생각건대 돌봐 줌이 두텁고 교도해 줌이 지극한 것이

             오래고 또 전일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지금껏 작은 공효도 낼 수


             없었습니다.  비록  후목(朽木) 은  시우(時雨) 로도  능히  감화시킬

             수 없으며, 누치(漏巵)는 장하(長河)로도 채울 수 없음을  안다고
             해도, 이에 종사하면서 부지런히 힘쓰고 쉬지 않는다면 장차 하늘의

             위령(威靈)에 힘입어 티끌이 쌓이고 미세함이 축적되어 타일(他日)
             의 날이 금일(今日)의 날과 달라지게 될 것을 밤낮으로 간절히 생각

             할 뿐입니다.

               근자에 이미 연재(蓮齋)에 거주하고 있는데 찾아오는 자들을 막을
             수가 없어 집안에는 책 읽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이에 저의 몸과 마음

             이 사뭇 편안하고 고요할 때가 없으니, 장차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소필기-



                후목(朽木):썩은 나무를 말한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의 제자 재여
                (宰予)가 주침(晝寢)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가 없다. 재여 같은 이를 꾸짖어서 무엇하겠는가.
                처음에 나는 남을 대할 때 그의 말만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지만, 이제 나는 남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서도 그의 행실을 살피게 되었으니, 재여로 인해 이렇게
                고치게 되었다.[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始吾於人也, 聽
                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라고 하였다.
                시우(時雨):단비로, 곧 성인의 가르침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공자의 교육 방식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첫 번째로 “제때에 내리는 단비처럼
                감화시키는 경우가 있다.[有如時雨化之者]”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희의 집주
                (集註)에서는 “공자가 안자와 증자를 가르칠 때 바로 그렇다.[若孔子之於顔曾是
                已]”라고 풀이하였다.
                누치(漏巵)는……없음을:‘누치’는 술이 새는 잔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범
                론훈(氾論訓)〉에 “낙숫물로 작은 물통을 채울 수 있으나, 강하의 물로도 구멍 난
                술잔은 채울 수가 없다.[霤水足以溢壺榼, 而江河不能實漏巵.]”라고 하였다.
                소필기(蘇弼基):1811~?. 자는 군명(君明), 호는 추남(秋南), 본관은 진주(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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