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2 - 답문류편
P. 332

今將赴京從仕, 願下一言敎誨。【奇陽衍】



             [답]  최초의 일은 마땅히 먼저 스스로 과정을 세워야 한다. 과정은

             다만 글 읽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옷 입고 하
             는 것부터 모름지기 마음속에 일정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아무렇게


             지내거나 규정을 어김이 없도록 하되, 마치 곽봉거[霍光] 가 나아가
             고 그침이 일정함이 있고 척촌도 틀리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한다. 이

             렇게 하면 마음이 주가 있게 되어 거의 방탕함을 면하게 되리라.

               매일 여관에서 새벽에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앉아 선유가 했던 ‘천만

             인 속에서도 항상 내가 있음을 안다.’ 라는 말을 묵념하고, 세심하게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기상이 어떠하며, 몰랐을 때 또 어떠한

             지를 사량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어제 인시부터 신시까지 어떻게
             지냈으며, 오늘은 또 어떻게 생활할까를 스스로 점검하여, 스스로 깨닫





                곽봉거:전한 무제 때 봉거도위를 지낸 곽광(霍光, ?~BC68)을 말한다. 자는 자맹
                (子孟)으로, 하동군(河東郡) 평양현(平陽縣) 사람이다. 한 무제(漢武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명신이다. “곽광은 궁궐 문을 드나든 지 어언 20여 년이나 되었지만,
                조심하고 삼갔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적이 없었다. 그의 사람됨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세심했기 때문에 매번 궁궐을 드나들며 수레를 내릴 때 나가고 머무르는
                곳이 일정했다. 낭관(郎官)과 복야(僕射)들이 몰래 표시를 해 두고 보았는데, 한
                자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霍光, 出入禁闥二十餘年, 小心謹愼, 未嘗有過. 爲人沈靜
                祥審, 每出入下殿門, 進止有常處, 郎僕射竊識視之, 不失尺寸.]”라고 한다. 《漢書
                霍光列傳》
                천만인……안다:허형(許衡, 1279~1368)의 어록에 나온 말이다. 허형은 원나라
                때 학자로, 자는 중평, 호는 노재(魯齋)이다. 허난 성[河南省] 농민 출신으로, 정이·
                주희(朱熹)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요추 등과 여러 학문을 연구했다. 쿠빌라이 칸이
                즉위하기 전에는 경조제학을 지냈으며, 즉위한 뒤에는 국자좨주[國子祭酒]에 임명
                되었다.



             332   답문류편 권4
   327   328   329   330   331   332   333   334   335   336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