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4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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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이란 3자를 제출하여 사람의 불선은 기로 말미암은 것이지 성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란 것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소자는 삼
             가 이 말씀을 지켜 ‘기질성을 말하자마자 문득 미발이 아니게 된다.’라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정시림(鄭時林)의 별지에 답하
             시는 데를 보니, ‘수암(遂菴)의 말이 이러하다.’라고 하신 대목이 있으

             니, 전에 들었던 것과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정의림-



             先生嘗曰, “氣若霎時澄淸, 則霎時無氣質之性, 一日澄淸, 則一日

             無氣質之性。 顔子三月不違仁, 則三月無氣質之性。” 又曰, “從古聖
             賢, 只說降衷, 只說秉彝, 只說恒性而已, 後世道學不明, 或有以性

             惡者,  或有以善惡混者,  而性善之道,  將不明於天下,  故先儒不得
             已而提出氣質性三字,  以明人之不善,  由於氣而不由於性之故也。”

             小子謹守此說, 以爲纔說氣質性, 便非未發也。 向見答鄭時林別紙,

             有遂菴曰云云, 似與前所聞有異。【鄭義林】



             [답]  ‘기질이 때에 따라 있고 없고 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본래 내가
             십분 향복(嚮服)한 바가 아니다. 일찍이 그대의 족인[정시림]과 더

             불어 말했던 것은 그 어맥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미발은 바

             로 십분 맑아 있을 때이니, 기질이 한쪽에 숨어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氣質之不隨時有無’, 本非吾之十分嚮服。 曾所與令族人言者, 不記

             其語脈云何, 未發是十分澄淸時, 不可以氣質藏在一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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