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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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者’【遂菴說】 汎論之, 不可謂不然矣, 第未知所謂‘本然’者, 於何見
得。 只氣質之循軌不亂處, 是也。 然則衆人氣質不美, 正當於不昏
則亂無澄然未發時, 見之。 苟未發矣, 則是乃氣質之偶然循軌者也,
非本然而何哉? 旣本然矣, 而復有不美之種子伏在一邊, 則天下終
無大本矣。
이상 호락(湖洛)의 제현 논변은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서 매양 내가
폐고(蔽痼)가 심하여 이해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병중에 납량(納
凉, 피서)을 하면서 대략 의심나는 것을 써 보았으니, 대개는 살펴보
면서 부족함을 찾아보려는 것이지, 겨우 일설을 얻었다고 하여 종신
토록 고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또 감히 당세의 전문가들과 더불
어 시비를 논쟁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밖에 아직도 의심스러운 것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심력(心力)이 미치지를 못했다. 진실로 동지(同
志)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한 지붕 아래에서 상확(商確)하기를 사양
하지 않겠다.
휴지 속에서 녹문(鹿門) 임씨의 한 단락 의론을 얻었는데, “진실로
이(異)를 말하면 성(性)만 이(異)할 뿐 아니라 명(命)도 이(異)일 것
이요, 진실로 동(同)을 말하면 성(性)만 동(同)할 뿐 아니라 도(道)
녹문(鹿門):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호로, 자는 중사(仲思), 본관은 풍천
이다. 1733년(영조9)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750년에 세자익위사 세마가 되고
시직에 승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1758년에 공주의 녹문에 은거하였다. 이재(李
縡)의 문인으로, 초년에는 스승의 학설을 신봉하여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
장하였으나, 중년에 이르러 기존의 학설을 비판하고 호락(湖洛)의 양론을 기일원론
적(氣一元論的) 입장에서 종합하여 자신의 학설을 수립하였다. 문집에 《녹문집(鹿
門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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