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5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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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偏全)은 선(善)의 한쪽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선의 한쪽이라

                 고 하는 것은 마치 구멍이나 틈새가 비록 크고 작음이 있으나, 달빛
                 은 그대로인 것과 같으며, 반우가 비록 모나고 둥글지만 물의 성(性)

                 에 이상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이 어찌 본연이 아니겠는가?
                   기질은 선악을 겸하여 말한 것이니, 선악을 겸한다는 것은 마치 진흙

                 을 탄 물의 흐리고 맑음이 층층이 다른 것과 같으며, 창문에 가려진
                 달빛의 밝고 어두움이 다양한 것과 같다. 편전을 기질이라고 한다면

                 어찌 편전을 폄하한 것이 아니리오? 기질의 성(性)을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은 있지만, 인물의 편전한 성도 군자가 또한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가?



                 偏全指善一邊而言。 善一邊也者, 如孔隙雖有大小而月光自若, 盤盂

                 雖有方圓而水性無恙。  若此者,  豈不是本然?  氣質是兼善惡而言。

                 兼善惡也者,  如和泥之水稠淸百層, 隔窻之月明暗多般。 以偏全爲
                 氣質, 豈不低陷了偏全? 氣質之性, 君子有不性者焉, 人物偏全之

                 性, 君子亦有不性焉者乎?



                 주자(朱子)가 〈답서자융서(答徐子融書)〉에서 말하기를 “기질지성(氣

                 質之性)은 다만 이 성(性)이 기질의 가운데 떨어져서 기질에 따라 스
                 스로 하나의 성이 된 것이니, 바로 주자(周子)가 말한 ‘각기 그 성을

                 하나씩  가졌다.[各一其性]’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성이 기질의 가운데 떨어져 스스로 하나의 성이 된다.’라는 것은 분

                 명히 “성이라고 말하자마자 이미 성이 아니다.” 라는 뜻이니, 이것이
                 바로 기질지성의 바른 해석이다. 그런데 도리어 〈도설(圖說)〉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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