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0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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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人物)에게 명한 바는 오상 외에 다른 것이 없는데, 오상이 기질에

             점령되어 버리면 천명은 곧 빈껍데기가 되고 말 것이다.
               비록 ‘본연’이란 미칭을 더해 준다고 해도 필경에는 과연 이것이 무엇

             이겠는가? 천명이 성(性)의 자리를 점거할 수 없으므로 점거한 바가
             부득불 기질에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갑변(甲邊)의 의론을 따르기

             어려운 이유이다. 을변은 오상이 동일하다 하여 본연을 말했으니, 이는
             착실한 일원(一原)으로, 갑변처럼 오상을 초월하여 공허한 일원을 세

             우는 것과 같지 않다. 때문에 끝에 가서 층절이 복잡한 것은 갑변처럼

             잘못이 심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만 ‘편전(偏全)은 본연이 아니
             다.’라는 말로 보면, 도리어 ‘동오상(同五常)’의 ‘동(同)’ 자가 이미 병폐

             를 띠고 있는 듯하다.

               어찌하여 같다고 하는가? 다만 오상이 바로 같은 곳이다. 오상이
             물(物)을 따라 편전하는 것은 바로 이 이치의 본분이니,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편전이 같지 않은데 오히려 같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반우(盤盂)나 도검(刀劍)을 동철로 만드는 데 있어서 같다는 ‘동(同)’

             이지, 혼동해서 반우나 도검이 다름없이 같다는 ‘동(同)’은 아니다.
               편전의 성이 본연이 아니라는 것은 반우와 도검을 떠나서 동철을

             찾으려는 말이다. 편전은 형이하인 것이요, 편전의 성(性)은 형이상인

             것이다. 형이상인 것이 본연이 되지 못한다면, 부자(夫子)가 말한 형상
             (形上)의 도(道)는 다만 기질의 한편만을 말한 것이겠는가? 그래서

             하나의 성(性)이지만 그 분(分)이 일(一)에 해롭지 않기 때문에 오상

             이 같다고 말해도 되며, 일(一)이 분(分)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편전
             의 성(性)이라고 말해도 된다.

               비록 그 명언(名言)하는 사이에 억양의 형세가 있는 듯하지만,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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