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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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을 세운다면, 양층의 본연은 차별이 뚜렷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도상(圖象)의 뜻과 같겠는가? 이일(理一)이 이미 분(分)이 없다고 말
             한다면, 오상(五常)이 강등되어 기(氣)로 인한 성(性)이 되는 것 또한

             당연한 다음 순서가 되고 말 것이니, 이 원통함을 언제나 씻을 수 있겠
             는가? 무릇 이 기(氣)가 있어야 바야흐로 이 이(理)가 있다는 것은

             유행(流行)의 한쪽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만약 실리(實理)
             의 본연을 논한다면 또한 과연 기(氣)로써 유무를 삼을 수 있겠는가?


               “비(費)하면서도 은미하다.” 의 ‘은(隱)’과 “은미한 것이 드러나다.”
             의 ‘미(微)’와 무극(無極)의 ‘무(無)’는 모두 귀와 눈으로 듣고 보아 미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요, 참으로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귀와

             눈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은 마음으로 알아야 한다. 마음이 만약 끝내

             그것이 어떤 형상인지 알 수가 없고, 입이 만약 끝내 그것이 무슨 물건
             인지를 말할 수 없다면, 참으로 없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상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도 어찌 일찍이 형상이나 소리 및 냄새가
             있겠는가? 단지 용(用)으로 인하여 미루어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천지에 있는 것도 다만 용(用)으로 인하여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을 것인
             가? 이 때문에 태극의 본연도 소리나 냄새가 없는 묘(妙)일 뿐이니,

             깊이 더듬어 자세히 말하자면 오상의 이(理)에 불과한 것이다.



                비(費)하면서도 은미하다:《중용(中庸)》 제12장에서 “군자의 도는 비하면서도 은
                미하다.[君子之道, 費而隱.]”라고 하였다.
                은미한 것이 드러나다:《중용(中庸)》 제33장에 “군자의 도는 담박하되 싫증나지
                않으며, 간략하되 문채가 나며, 온화하되 조리가 있으며, 먼 것이 가까운 데서 나온
                다는 것을 알며, 바람이 말미암는 곳을 알며, 은미함이 드러나는 것을 알면 가히
                더불어 덕에 들어갈 수 있다.[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 知遠之近, 知風
                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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