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5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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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萬物)·산수(散殊)의 가운데 나아가서 도출할 수 없는 것을 도출하
고서 공공(公共)적인 하나의 본령이라 여긴 것이니, 이하의 모든 권
(圈)은 바로 그 본색이며 실체로, 제일권(一圈)이 여러 권(圈)과 차
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을 논하는 것은 인물 측의 일이므로, 흡사 태극이 아직 도출
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있어서는 나의 것이 도리어 일원(一原)이요,
너에게 있어서는 너의 것이 도리어 일원(一原)이니, 사람의 힘을 빌리
지 않고도 하나하나가 원만하고 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너와 나의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으로 일 없는 가운데 일을 만들어
서 반드시 일층(一層)을 도출한 연후에 만물의 일원이라고 해야 하는
가?
전성(前聖)이 도리에 대해 비록 형기를 섞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또한 형기를 분리하여 말하지도 않았다. 《시경》에 말하기를 ‘물(物)이
있으면 칙(則)이 있다.’ 라고 했고, 《주역》에서 ‘한번 음하고 한번 양
하는 것을 도(道)라 한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제 각기 그 하나
의 성을 가졌다고 말했으니 이미 섞이지 않은 것인데, 다시 그 윗면에
그 뜻은……있다:형이상(形而上)을 의미하는 제1층에 대하여 형이하(形而下)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예컨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에서, 무극이태극
(無極而太極)이 제1층이라고 한다면, 그 아래의 음양(陰陽)·오행(五行)·남녀(男
女)·만물(萬物) 등의 권(圈)은 제2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시경에……있다:《시경》 〈증민(蒸民)〉에 “하늘이 뭇 백성을 내었으니 사물이 있으
면 법칙이 있네. 백성이 떳떳한 본성을 갖고 있는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라는 구절이 있다.
주역에서……한다:《주역》 〈계사전 상〉 5장의 첫 번째 절은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이고, 마지막 절은 “음하고
양하여 측량할 수 없음을 신(神)이라 한다.[陰陽不測之謂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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