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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문들의 내용은 논란의 핵심 중 하나였던 기정진의 〈외필〉이 율곡
을 비판하고 있다는 의론에 대해 스승인 기정진의 성리설이 기호학계
의 연원인 율곡과 배치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었다.
통문을 통해 노사학파의 주요 학자들은 기정진의 가학(家學)이 율곡으
로부터 비롯됨을 명시하였으며, 기정진 또한 평생토록 율곡의 도를
존신(尊信)하였고, 그 학문을 강명(講明)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기정진의 여러 저술의 일부 내용이 율곡의 학설과 차이가 나는 것은
새로운 학설을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주기설이 성행하는 것을
보고 후학들을 경계하고자 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노력 이외에 정재규, 정의림을 비롯하여 학파 내의 여러 문인
들은 당시 기호학계에서 학문적 영향력이 가장 컸던 전우가 작성한
일련의 비판서에 대응하여 반비판서를 작성하여 이론적인 대응도 전개
하였다. 이러한 학술적인 대응은 다른 학파 학자들의 재비판을 이끌어
내어 기호학계 전반의 학설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전우는
정재규가 작성한 일련의 반비판서에 대해 〈관정백헌집외필변변(觀鄭
柏軒集猥筆辨辨)〉, 〈제정씨외필변변(題鄭氏猥筆辨辨)〉 등을 저술
하여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기정진의 여러 저술 이외에도 《노사집》 삼간본 간행과 맞물려 기정
진 문인들의 요청에 따라 최익현(崔益鉉)이 작성한 〈노사신도비명(蘆
沙神道碑銘)〉의 일부 내용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김평묵(金平默,
이상은 기우만의 《松沙集》, 정의림의 《日新齋集》, 정재규의 《老柏軒集》 등 참조.
鄭載圭, 《老柏軒集》 卷29, 〈辨誣文示諸同志〉 등 참조.
田愚, 《艮齋集》 後編, 卷13.
田愚, 《艮齋集》 後編, 卷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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