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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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에 달리 한 덩어리의 구리쇠가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하나의

                 태극이 다만 분수 속에 있다.’라는 것이다.
                   오직 이(理)는 대(對)가 없으니, 어찌 절실하게 비유할 것이 있겠는

                 가? 다만 그 일(一)과 수(殊)가 일찍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대략
                 이와 같다. 일(一)이면서 일찍이 분(分)이 없지 않고, 수(殊)이면서도

                 일(一)에 해롭지 않으니, 그 묘(妙)가 대개 이와 같다. 이 어찌 제가의
                 의견처럼 먼저 분(分)이 없는 일(一)이 있다가, 뒤에 기(氣)로 인한

                 분이 생겨나서, 이(理)는 이(理)대로, 분(分)은 분(分)대로 되겠는가?


                   공자가 말씀하시길 ‘백성은 매일 사용하면서도 모른다.’ 라고 하였
                 으니, 대저 매일 사용하는 형기(刑器)에 이 이(理)가 붙어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런데 백성들은 식견과 사려가 거칠고 얕아서 눈 속에 형기만

                 보이고, 형기의 상면(上面)에 일단의 일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이 이것을 걱정하여 상하로 분별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니,

                 도기(道器)의 설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상도하기(上道下器)는
                 모두 형(形)으로써 말하였으니, 일형일리(一形一理)는 바로 이른바

                 ‘분수(分殊)가 만수일리(萬殊一理)이다.’라는 말이다. 성인은 처음부
                 터 자주 말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이(理)란 일(一)이 되기를 기약하

                 지 않아도 저절로 일(一)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만수(萬殊)의 곳에서 절단하여 도기(道器)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면, 이(理)가 일(一)이 되지 않는 것은 근심할 바가 아니다. 이러

                 므로 배우는 사람이 평생 박문약례(博文約禮)하는 것은 모두 분수상의



                    백성은……모른다:《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인자(仁者)는 도를
                    보고서 인(仁)이라 하고, 지자(知者)는 도를 보고서 지(知)라 하는데, 백성들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百姓日用而不知]”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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