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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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와하는 것도 한 몸이니, 두 몸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이일이 분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다. 분수가 일찍부터
             이일(理一)에 담겨 있음도 또한 이것으로 말미암아 한번 뒤집어서 보

             는 것에 불과하다. 이 물(物)이 아직 있지 않았을 때 반드시 먼저 이
             물(物)의 이(理)가 있음을 가설해서 말하자면, 만물이 아직 있지 않을

             때는 일물(一物)과 같고, 만리(萬理)가 반드시 먼저 있는 것은 일리(一
             理)와 같다. 이것은 꼭 한 손에 굴신과 번복을 담고 있는 것과 같고,

             하나의 몸이 행주와 좌와를 포함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자가 말한 ‘충막(冲漠) 만상(萬象)’과 주자가 말한 ‘이미 갖추었다[已
             具]’와 ‘먼저 있다[先有]’는 등의 말이 한두 군데에 그치지 않으니, 이것

             이 모두 무엇을 말한 것이겠는가?

               이것으로도 원두(源頭)의 일리가 분(分)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다. 청컨대 다시 한 가지 천근한 일로 비유해 보겠다.

             지금 한 덩어리의 구리쇠가 있고, 이것을 하나의 태극(太極)이라고
             할 때, 반우(盤盂)를 만들 수 있고, 도검(刀劍)을 만들 수 있으니, 이것

             은 분수가 일(一)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른바 ‘찬연(粲然)’이라는 것은
             동쪽에서 반우를 만들 수 있고 서쪽에서 도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니, 혼연할 따름이다. 그러다가 반우의 화로에 들어가면 반우가

             되고, 도검의 화로에 들어가면 도검이 되어, 각기 그 본분(本分)의
             일을 얻은 것이니, 화로는 기화(氣化)요, 각기 그 일분(一分)을 얻는

             것은 바로 각일기성(各一其性)의 분수이다. 이 분수는 임시로 배정한

             것이 아니다. 이 본연이 비록 반우와 도검이 되었으나, 옛날의 구리쇠
             를 벗어나지는 못하니, 구리쇠의 기량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수 중의 이일’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반우도검(盤盂刀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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