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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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일은 주자도 오히려 ‘극히 말하기 어렵다.’라고만 하고,
어찌하여 “성은 본래 혼연한 일리(一理) 일뿐이니, 사물에 감응하여
동하고 기를 타고 변화한다. 오늘 일리가 생기고 내일 일리가 생겨서
쌓여서 만리(萬理)가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다면 말
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알기도 매우 쉬웠을 것인데, 왜 굳이 이
렇게 이것을 가지고 ‘말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까?
다만 이(理)가 본래 이와 같기 때문에 말하기가 비록 어려울지라도
둘러대서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理)가 본래 저와 같지 않기
때문에 알기가 비록 쉬울지라도 거짓으로 속여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저 일리(一理)라고 한 것은 만리(萬理)를 총합하여 이름 지은 것인
데, 만약 만리(萬理)를 덜어내 버리면 이른바 일리란 것이 무슨 이(理)
이겠습니까? 비유컨대 일인(一人)이라고 한 것은 백체(百體)를 합쳐
서 말한 것인데, 만약 백체를 치워버린다면 이른바 일인이란 것이 무슨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이란 형체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눈에
눈자위가 있고, 코에는 콧대가 있는 것이며, 혀에는 혓바닥이 있고,
귀에는 귓바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장벽(墻壁)이 있고, 모두
모두가 가리어 있지만, 이(理)는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계한은 있어도 애초에 장벽이 없고, 각기 체단이 있어도 그렇
다고 뭉쳐져 있는 것이 아니니, 이른바 ‘본연(本然)의 묘’라고 한 것이
이것이며, 이른바 ‘소이연(所以然)하여 바꿀 수 없는 것’ 이 이것입니
다. 이(理)가 통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은데, 지금 사람은 ‘만리가 완전
소이연(所以然)……것:《대학혹문(大學或問)》 격물전(格物傳) 주(註)에 나온 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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