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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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  咀嚼出來,  乃不可分開處,  分開底說話。  今人作隨遇輒乘看,
             則乃本是二體而合一底說話, 於本旨燕越矣。




             기(氣)와 이(理)를 대거(對擧)하여 이기(理氣)라고 부른 것은 언제
             부터 시작되었는가? 내 생각에 이는 필시 성인의 말씀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 그러는가? 이(理)의 존귀함은 대거할 것이 없는데 기(氣)
             가 어찌 이(理)와 대우(對偶)를 할 수 있겠는가? 이(理)는 광활하여

             대거할 것이 없으니, 기(氣) 또한 이(理) 가운데 일이다. 바로 이 이

             (理)가 유행하는 손발이니, 이(理)에 대하여 본래 대적(對敵)이 아니
             다. 짝도 아니고 적(敵)도 아닌데 대거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본원(本源)을 말하는데 마땅히 공자(孔子)와 같은 이가 없으며, 공

             자가 본원을 말하는데 《대역(大易)》과 같은 것이 없다. 이(理)를 말할
             때 반드시 이(理)로 기(氣)를 거느리고, 기(氣)를 말할 때는 곧 나아가

             이(理)를 밝혔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道)라고 한다’와 ‘태극이

             양의(兩儀)를 생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십분 타당하여  물샐
             틈이 없으니, 어찌 일찍이 한 곳이라도 대치를 시켜 쌍으로 들어 말한
             경우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형이상하(形而上下)’는 대거(對擧)가 아닌가라고 하겠지

             만, 이 절의 주안점은 ‘상하(上下)’ 자에 있으니, 상하(上下)는 바로




                 십분 타당하여:‘정당(停當)’은 온당하다, 타당하다는 뜻이다. 《주자전서(朱子全
                書)》 권14에 “부자(夫子)가 말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은 자연스럽고 타당하여 적
                잖은 뜻이 있는 것과 같다. 자공의 ‘문(文)은 질(質)과 같고 질(質)은 문(文)과
                같다.’는 말은 치우친 것이다.[夫子言文質彬彬, 自然停當恰如, 不少了些子意思.
                若子貢文猶質, 質猶文, 便說得偏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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