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답문류편
P. 120
물건이 동정할 수 있겠는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非有使之]’라는 한 구절 안에 천명이
이미 그쳐 버렸다. 천명이 그쳤는데도 음양이 여전하다는 말은 실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천명은 만사의 본령(本領)이거늘, 이제 저절로
가고 저절로 멈추며 천명과 관계없는 것이 있다면, 이는 천명의 외에
또 하나의 본령이 있는 것이다. 두 개의 본령이 각각 스스로 추뉴(樞紐)
가 되는 것이니, 조화(造化)에 결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이(理)가 약하고 기(氣)가 강하게 되니, 나는 기(氣)가 이(理)의
자리를 빼앗을까 염려스럽다. 이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라고
하고, ‘시킨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
연고’가 이미 기분(氣分)에 점유된 것이며, ‘그럴 수밖에 없는 연고’는
바로 ‘소이연(所以然)’이다.
천지만물이 소이연을 언급하면 바로 근원을 궁구(窮究)한 것이요
다시는 여지가 없거늘, 오히려 이어서 말하기를 ‘소이연인 것이 이(理)
이다.’라고 하니, 소이연을 가설한 위에 다시 무슨 소이연을 둔다는
말인가? 어찌 허명(虛名)만 있고 실사(實事)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
가?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말하자면, ‘자이(自爾)’란 두 글자와 ‘소이연
(所以然)’이란 세 글자가 흡사 대적(對敵)을 한 듯하니, ‘자이’가 주장
을 하면 ‘소이연’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제 두 가지를 두고 함께 쓰려고 한다면, 그 모양이 자못 위연(魏
延)과 양의(楊儀) 가 함께 승상부에 있는 격이니, 어찌 필경에 틀어
위연(魏延)과 양의(楊儀):위연(?~234)은 촉한의 장군으로 자는 문장(文長)이
120 답문류편 권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