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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또 거듭 말하기를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非有使之者]’

                 라고 하니, ‘스스로 그러하다.[自爾]’고 말했을 때는 말이 오히려 허
                 (虛)하지만,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非有使之]’라는 말에 이르

                 러서는, 말뜻이 확고하여 진실로 음양이 아무런 연관이 없이 저절로
                 가고 저절로 멈추는 것과 같다.

                   다만 이 두 구절은 나의 천견(淺見)으로는 이미 알 수가 없다.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 라고
                 했으니, 하루라도 음양이 없으면 천명이 베풀어질 곳이 없는 것이요,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不誠無物]’ 라고 했으니,

                 천명이 하루라도 그친다면 음양도 없는 것이다. 본령이 없는데  무슨



                     시키는……아니다:성혼(成渾)이 ‘기(氣)가 발하면 이(理)가 탄다[氣發而理乘]’
                     는 말의 의미를 묻자, 이이가 이에 답한 내용이다. 《율곡전서》 권10 〈답성호원〉에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
                     이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동하면 이(理)가 동(動)에 타는 것이
                     요 이가 동하는 것은 아니며, 음이 정하면 이가 정(靜)에 타는 것이요 이가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陰靜陽動, 機自爾也, 非有使之者也. 陽之動則理乘於動, 非理動
                     也. 陰之靜則理乘於靜, 非理靜也.]”라고 하였다.
                     한번……한다:《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
                     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니, 계속하는 것은 선(善)이고 갖추어져 있음은 성(性)
                     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다.
                     성실하지……없다: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성상(誠上)〉에 “성(誠)이
                     라는 것은 성인의 근본이다.[誠者, 聖人之本.]”라고 하였고, 《중용장구(中庸章
                     句)》 제25장에 “성(誠)이라는 것은 물(物)의 처음이자 끝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
                     君子誠之爲貴.]”라고 하였다.
                     본령이 없는데:원문의 ‘피(皮)’는 본령 또는 근본의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
                     氏傳)》 〈희공(僖公) 14년〉 조에 “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皮之不
                     存, 毛將安傅.]”라고 하였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먼저 선결(先決)해야 나머지 문
                     제들이 해결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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