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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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此《編》自爲一書以便學者。 故原集中書疏雜著, 亦各隨門目采
入。 而其散逸未收者, 亦應有之, 以俟後人。
이 《류편》은 경진년(1880, 정조24)에 시작되었다가 이번에 비로소
완성되었다.-선생께서는 기묘년(1879) 12월 29일에 돌아가셨고, 경진년 2월에 장
사 지냈는데, 이때부터 약간의 글들을 수집해 왔다.- 처음에는 문인 김석귀(金
錫龜) 와 정의림(鄭義林) 이 논의를 시작하였고, 손자 우만(宇萬)
이 그 결정을 도와서 나(재규)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가만히 속으로 생각해 보니 선생께서 살아 계실 때는 도가 선생
께 있었고, 선생께서 돌아가시니 도가 유서(遺書)에 있다. 대들보가
갑자기 무너졌으니, 이 유서가 없으면 어떻게 선생의 도를 기술하겠는
가? 이에 참망함을 헤아리지 않고 몇 권을 편집하였다. 그리고 의심쩍
어 감히 독단할 수 없는 점이 있으면 석귀(錫龜)에게 편지를 보내
서로 바로잡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습이 덜 되어 일을 끝낼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김석귀(金錫龜):1835∼1885. 자는 경범(景範), 호는 대곡(大谷), 본관은 김해(金
海)이다. 김관(金管)의 후손으로 남원 송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노사(蘆沙) 기정진
(奇正鎭)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현 담양군 대전면으로 이거하였다. 《대곡집(大谷
集)》이 전한다.
정의림(鄭義林):1845~1910.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 본관은 광
산(光山)이다. 아버지는 제현(濟玄)이고, 어머니는 진원 박씨(珍原朴氏) 치성(致
聖)의 딸로, 화순 능주 대덕리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제자로 노사학파의 인물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인 집단을 형성한 사람이다. 유집으로는 1927년에 간행한
《일신재집(日新齋集)》 21권 10책과 1967년에 간행한 《일신재선생연원록(日新齋
先生淵源錄)》 3권 2책이 있다.
독단할……있으면:원문의 ‘전첩(專輒)’은 홀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전단(專斷)’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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