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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러 저작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작성된 〈납량사의〉(46세,
77세 때 일부 개작)는 근원적 실체로서의 리와 현상적 원리인 분(分)의
유기적 관련성을 정초한 리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한 리(理) 중심의
이해가 구체화된 것이었다. 그는 당시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호락 양론의 계승자들 간에 빚어진 대립과 갈등에 주목하면서 호락
논쟁의 주요 쟁점 중 인성(人性)과 물성(物性) 동이(同異)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면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으며, 그 해결의 핵심
고리를 근원적 동일성의 원리와 현상적 다양성의 원리를 매개하는 리
일분수에 대한 리 중심의 이해에서 찾았다. 다양한 현상 세계의 원인을
기(氣)가 아닌 리일지리(理一之理)의 실재성과 분수지리(分殊之理)의
본연성을 모두 확보하는 그의 리분원융(理分圓融) 체계에 찾은 그의
인성물성론은 호론과 낙론의 성론(性論)에 대한 비판적 이해로부터
비롯되어 리분일체(理分一體)의 현실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체계적
이해로 귀결되었다.
중년기 이후 지속된 기정진의 호락논쟁에 대한 비판적 지양을 도모
하는 이론적 모색은 그 근저에 기에 대한 리의 철저한 주재가 자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정진은 40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리 중심의 리기
론 체계의 구체화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50대
이후 학문적 교유가 본격화하는 호남의 정읍 출신 학자 권우인(權宇仁,
?~1860)과의 서신 교환은 그의 이러한 입장이 구체적으로 표면화하
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율곡의 리기론적 입장을 기의 능동성에 주목하
여 이해하는 권우인과 달리, 기정진은 기호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
하는 기의 자발적 운동에 대한 핵심 명제인 기자이(機自爾), 비유사지
(非有使之) 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였으며, 리의 철저한 주재하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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