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7 - 답문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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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확(鼎鑊) 이 앞에 있어도 죽기를 집에 돌아가듯 하는 것은 일절
(一節)의 선비만 되어도 넉넉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사생(死生)이
눈앞에 닥쳤어도 그 지킴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 지가 밝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자는 ‘오훼(烏喙, 독초의 이름)를 먹지 않고 수화(水
火)를 밟지 않는다.’ 라는 것을 진지(眞知)로 여겼습니다. 만약 이 같은
류를 모두 지(知)라고 말할 수 없다면, 꼭 ‘태극이 양의를 생한다.[太極
生兩儀]’는 말로부터 미루어 나가 만물이 생하고 만사가 나오는 대목에
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라고 말해야겠지요?
또 치지(致知)는 하나의 지(知) 자와는 간격이 있습니다. 경(經)에
형의……것은:《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형의 팔을 비틀어 그 음식을
빼앗으면 먹을 수 있고 비틀지 않고는 먹을 수 없다면, 비틀겠는가?[紾兄之臂而奪之
食則得食, 不紾則不得食, 則將紾之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임인(任人):간사하고 아첨 잘하는 사람을 말한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순 임금이) 12목(牧)에게 자문하여 말하기를 ‘먹을 것은 때를 놓치지 않는 데 달려
있으니, 먼 곳은 회유하고 가까운 곳은 위무하며 덕 있는 사람을 후대하고 인후한
사람을 믿으며 간악한 사람을 막으면 오랑캐도 모여 와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咨十有二牧曰, ‘食哉惟時, 柔遠能邇, 惇德允元, 而難任人, 蠻夷率服.’]”라는 글이
있다.
도거(刀鉅)와 정확(鼎鑊):혹형(酷刑)을 말한다. 도(刀)는 거세(去勢)하는 데 쓰는
칼이고, 거(鉅)는 월형(刖刑)에 쓰는 톱이며, 정확(鼎鑊)은 사람을 삶아 죽이는 큰
솥이다.
오훼(烏喙)를……않는다:《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6장의 주에 “오훼를 먹을
수 없고, 물과 불[水火]은 밟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스스로 먹지도 밟지도 않는
것과 같으며, 추우면 옷을 더 입고자 하고, 배고프면 밥을 더 먹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절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과연 배고플 때 밥 먹고 싶듯이 추울 때 옷을
입으려 하듯이 선을 보고, 오훼를 먹어서는 안 되고 물과 불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듯이 악을 본다면, 이는 뜻이 스스로 성실한 것이다.[如知烏喙不可食, 水火不
可蹈, 則自不食不蹈, 如寒欲衣, 飢欲食, 則自是不能已, 人果見善如飢欲食, 寒欲衣,
見惡如烏喙不可食, 水火不可蹈, 則此意自是實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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