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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하는데 천지가 어디에 마음을 두겠는가.’ 라
                 는 말이 이것이다. 그 의미는 대개 본래 주재(主宰)함이 있으나 원래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것이요, 비록 마음 둘 곳이 없으나 실제로는 주

                 재함이 있다는 말이다. 그대의 말은 혹은 유심(有心)한 곳도 있고 혹
                 은 무심(無心)한 곳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어느 곳이 무심한

                 곳이고 어느 곳이 유심한 곳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송시일(宋時一)이 말하기를 “유심과 무심한 곳은 체용(體用)상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라고 하기에 제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유심한 곳을

                 체(體)로 삼고, 무심한 곳을 용(用)으로 삼아야 하는가? 아니면 무심
                 한 곳을 체(體)로 삼고 유심한 곳을 용(用)으로 삼아야 하는가? 내

                 생각에는 천지의 마음이 본시 주재함이 있으나 원래 마음을 쓸 데가

                 없기 때문에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며, 비록 마음을 쓸 데가 없으나
                 실은 주재함이 있기 때문에 ‘유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없다면 체(體)와

                 용(用)이 모두 없는 것이고, 있다면 체(體)와 용(用)이 모두 있는 것이



                   말은 단지 그것의 무심처를 말한 것이다. 만약 과연 무심하다면 모름지기 소가 말을
                   낳기도 하고 복숭아나무에 오얏꽃이 피기도 할 것이다.[如公所說, 祗說得他無心處
                   爾. 若果無心, 則須牛生出馬, 桃樹上發李花.]”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1 理氣上》
                   사시(四時)가……두겠는가:주희가 제자 양도부(楊道夫)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이것은 천지의 무심처를 말한 것이다. 가령 ‘사시(四時)가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한
                   다.’고 했을 때 천지가 어디에 마음을 두겠는가.[這是說天地無心處. 且如四時行百物
                   生, 天地何所容心.”]라고 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 〈이기 상(理氣上)〉
                   이 말은 원래 《논어(論語)》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제자 자공(子貢)에게 한 말이
                   다. “공자가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니, 자공이 ‘부자(夫子)께서 말씀하
                   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어떻게 도(道)를 전해 받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가
                   ‘하늘이 언제 말을 하였던가. 사시가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하나니, 하늘이 언제 말을
                   하였던가.’라고 하였다.[子曰予欲無言. 子貢曰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天何言
                   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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