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남도의병열전 14) 교도들과 함께 '이상향' 꿈꿨다···'보국안민' 기치 창시한 손화중
무등일보-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기획
남도 의병 열전 14. 손화중
동학농민군의 첫 봉기는 1894년 3월 20일 무장기포였다. 1월 고부농민봉기, 3월 무장기포와 백산대회, 4월 황토현전투로 이어지는 동학농민군의 봉기 과정을 살펴보면, 고부와 떨어져 있는 무장지역에서 왜 기포가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고부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전봉준은 왜 무장에서 다시 기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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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손화중은 고창과 인접한 흥덕의 이씨 재실에 은신해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군이 자수하지 않으면 아들을 대신 처형하겠다고 협박하자, 손화중은 재실지기에게 “그대가 나를 체포한 것으로 하여 포상을 받아라”라고 말하고 스스로 잡혀갔다고 후손은 증언한다. 재실지기는 손화중을 체포한 공으로 증산군수에 제수되었다 한다. 서울로 압송되어 재판에 넘겨진 손화중은 1895년 전봉준·김덕명·최경선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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