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남도의병열전 11)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지키려 일어난 영호도회소와 김인배
무등일보-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기획
남도 의병 열전 11. 영호도회소와 김인배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부터 비롯된 제2차 동학농민전쟁은,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싸운 전면전이었다. 때로는 정부군과 싸우기도 했지만, 정부군의 실질적인 지휘는 일본군이 하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전봉준, 김개남 등의 활동을 주목하지만, 실제는 무장의 손화중, 무안의 배상옥이 이끄는 농민군 세력이 이들보다 최소 2~5배 정도로 규모가 컸고, 나주의 오권선, 장흥의 이사명·이방언도 전봉준 못지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순천 지역을 근거로 김인배가 결성한 ‘영호도회소’는 제2차 동학농민전쟁 때 결성된 최초의 전투부대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2차 전쟁의 주무대는 전남지역이었다.
(중략)
영호도회소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자 12월 7일 지역의 아전들과 민병이 손을 잡고 김인배를 체포하여 죽였다. 일본군과 치열한 독립전쟁을 치렀던 영웅은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지도자를 잃은 영호도회소는 무너졌다. 김인배가 효수당하기 직전 같이 있던 처남인 조승현이 김인배에게 “매형, 집에 같이 갑시다”고 했더니, 김인배는 “나는 갈 수 없네. 자네는 집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여생을 다하기 바라네. 나는 여기에 포위되어 있어서 많은 동료를 버릴 수 없어,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였네. 대장부로 태어나 떳떳이 목숨을 마치겠네”라고 답했다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빛나는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의병대장의 결기가 느껴진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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