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0. (한겨례) 옛 호남문헌 등 ‘10만점’ 모았지만…둘 곳 없는 셋방살이
1558년 10월 성균관 대사성(성균관의 장)이었던 퇴계 이황(1502~1571)에게 갓 과거에 급제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30대 초반의 이 젊은이는 곧장 이황에게 성리학의 오랜 난제 ‘사단칠정’과 ‘이기’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조선 최고의 지성으로 꼽혔던 이황은 젊은이의 물음을 내치지 않고 경청한 뒤 넌지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듬해부터 8년간 두 사람은 10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논쟁한다. 이른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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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원장은 “건물이 노후화해 그나마 가벼운 고문서는 괜찮지만 근현대 서적은 수집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독립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각 지자체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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