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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학산책

[맛 기행] 삼복에 찾아온 귀인 민어 게시기간 : 2021-08-2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1-08-17 16:53

조회수 :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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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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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기행 다섯번째 이야기2021년 8월 20일
다섯번째 이야기
   

삼복에 찾아온 귀인 민어

 

여름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짧은 장마와 이어진 불볕더위도 오는 가을을 막을 수는 없다. 이제 가을을 준비해야 한다. 어쩌면 여름 복달임은 여름을 잘 넘기는 것도 있지만 그 보다 가을을 준비하는 것이 더 컸다. 그 복달임으로 바다음식 중 으뜸으로 삼는 것이 민어탕이다. 아쉽다면 백성들이 즐겨먹었다는 ‘民魚’라는 말이 무색하다. 작년에 15만원을 주고 사먹었는데, 금년에는 25만원이다. 5킬로그램 민어를 주문했더니 청구한 금액이다. 철철이 이용하는 중매인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이니 비싸게 받을 리 없지만 너무 비싸다.

 

민어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다. 잘 아는 참조기, 부세, 수조기, 보구치 그리고 아주 작은 조기새끼라고 부르는 황강달어도 같은 민어류이다. 지구상에 150여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 10여 종이 서식한다.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갯벌에서 서식하며 작은 새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민어는 새우젓으로 유명한 임자도 주변 바다에 여름철에 찾는 단골손님이다.

그림1

<자산어보>에 소개된 민어

* 추사가 유배지에서도 찾던 음식

 

조선시대 학자 중 식객으로 평가받는 추사의 민어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다. 제주에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제철음식을 챙겼다. 주로 육로로 이동해 강경에서 배편으로 제주로 보냈다. <추사언간>(1841년 신축 윤 7월 12일) 내용이다.

 
이번에 보내준 반찬은 전부 왔소. 민어와 조기는 약간 머리에 상처가 있으나 못 먹게 되지는 아니하여서 병든 입에 조금 식욕을 돋우고 어란도 성하게 와서 쾌히 입맛을 돋우니 다행이오.
 

추사의 편지 내용 중에는 민어만 아니라 북어, 새우젓, 조기젓, 산포(산적과 쇠고기포), 저고리, 장육, 건포, 수대 등을 아내에게 보내달라고 요청이 많았다. 한 여름이었으니 마른 것이나 젓갈이 아니라면 몇 달 동안 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추사 편지를 보면, 강경에서 제주도로 보내는 배편이 길게는 네 달이 걸리기도 했다.

 

『옥담시집』(옥담사집 만물편 어물류)에 ‘민어’라는 시가 있다. 그 내용 중에 솥에 끓이면 탕이 맛있지만, 회를 치기는 좋지않고, 건조시킨 뒤에는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간다고 했다. 지금처럼 민어회를 즐길 수 없었다. 숙성한 선어회를 먹기 시작한 것이 오래된 것이 아니다. 말리거나 염장처리 한 후 보관하거나 변하기 전에 탕을 끓여 먹었다. 식감을 중시하는 우리 식문화를 고려하면 민어회는 별로다. 너무 부드럽고 물렁물렁하다. 하지만 탕으로는 고소함과 진함이 더해져 으뜸이다. 오죽하면 복달임으로 민어탕을 으뜸이라 했을까. 말린 후 쳐서 내놓은 민어는 부세를 이용한 요즘 굴비백반과 비교할 수 없다. 시집 내용과 딱 맞다.

 
巨口同鱸狀 / 纖鱗少有差 / 肌充豐膳足/ 腸抱續絃奇 /入鼎湯猶可/ 盤膾不宜登 / 當看乾曝後 / 臨飯手先持(『옥담시집』에서)
 
그림2

사진 파시, 임자면 타리섬 앞에 형성된 민어파시

* 모래밭에 지어진 움막들, 민어파시

 

임자도 딸린 섬 ‘섬타리’와 ‘뭍타리’는 하우리 옆에 있는 작은 섬이다. 민어 텃밭과 가까워 성어기에 배들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뭍타리가 마주보이는 솔숲 아래 임시천막이 세우지고 민어파시가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민어를 해체하면 내장을 임금으로 주고, 민어는 얼음에 재워서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기억했다. 당시 <목포부사>에는 민어를 염장해 말렸다고 했다. 타리섬 밖에 상고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상인들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본인 기생들도 자리를 잡았다. 목욕탕과 유곽도 들어오고 요리집도 문을 열었다.

물이 빠지면 뭍타리와 하우리 솔숲이 모래밭으로 연결되었다. 이곳부터 전장포에 이르기까지 30리에 이르는 모래밭이 펼쳐진다. 오늘날 대광해수욕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신안군은 이곳에서 튤립축제를 하고, 모래밭 골프와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일본 어민들은 이곳을 ‘타리파시’로 기억했다. 민어는 이곳만 아니라 젓새우가 많은 강화도와 경기만 일대에서 많이 잡혔다. 특히 덕적군도에서 잡은 민어는 굴업도 목기미해변으로 모여들어 파시를 이루었다. 역시 일본으로 가져갔다.

 

민어는 성질이 급하다. 민어류가 다 그렇듯이 부레를 이용해 뜨고 가라앉는다.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수면으로 올라오면 곧바로 죽는다. 또 육질이 연해서 여름철 상온에서 쉽게 부패한다. 따라서 잡는 즉시 얼음에 파묻어야 한다. 송도 위판장에 들어오는 민어들은 대부분 연안에서 잡아 당일 가져오는 것들이다. 먼 바다에서 며칠씩 조업을 해서 급냉을 해서 보관하다 들어온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위판장 민어보다 값이 비싸지만 식객들이 여름철에 즐겨 찾는다. 선어로 즐기기 좋은 상태로 위판되고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지도읍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여름철에는 사람보다 민어가 더 많이 탄다는 말이 있다. 얼음박스에 갈무리해서 전국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림3

사진 2620 민어파시가 형성되었던 임자도 하우리 뭍타리섬(우)과 섬타리(좌)

* 민어의 텃밭, 부남군도

 

중복을 앞둔 시기 임자도 하우리 솔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검은 실로 민어그물을 만들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민어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섬이 임자도다. 지금은 다리가 연결되어 무시로 오갈 수 있는 섬으로 바뀌었다. 신안군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칠산바다와 접하고 있는 섬이다. 주변에 재원도, 부남도, 노록도, 허사도 등 부남군도로 칭하는 작은 섬들이 모여 있다. 이 일대가 여름철 민어 서식지자 산란장이다. 어부들은 이곳을 ‘민어텃밭’이라고 한다. <자산어보>에 ‘나주 여러 섬 북쪽에서는 음력 5-6월에 그물로 잡고, 7-8월에는 낚시로 올린다’고 했다. 당시 신안 여러 섬은 모두 나주에 속할 때다.

 

따뜻한 제주바다 남쪽에서 겨울을 난 민어가 봄철이면 산란하기 좋고 먹이가 풍부한 서남해로 이동한다.

 

민어 잡이가 여름철이라고 하지만 실제 조업은 초복 전후 시작해 말복 전 한달 정도다. 그 중에서도 물이 살아나고 조류가 좋으면서 파도가 높지 않아야 조업이 가능하기에 실제로는 10여 일에 불과하다. 민어철은 짧다. 파시는 사라졌지만 고맙게 민어는 삼복이면 어김없이 모래밭을 기억하고 찾아준다.

 

민어는 낮에는 깊은 바다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가 밤에 활동한다. 그래서 물살이 일어나는 사리와 바람이 일고 파도가 좀 있을 때 오히려 그물을 놓기가 좋다. 임자도에서 민어잡이 마을로 유명한 하우리 주민을은 옛날 분들에게 초복날 정오 무렵이면 민어가 부욱부욱 운다고 들었다. 이때가 민어잡이 하기 좋은 사리 물때다. 그물은 만조 1 시간 전, 간조 1시간 전이 좋다. 그 때 그물을 놓고 플라스틱 부표로 수면을 내리쳐서 민어가 움직이도록 한다. 조류에 등이 떠밀리고 소리에 놀란 민어가 그물에 걸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그물을 걷는다. 여름철 연안에서 민어처럼 큰 물고기가 잡히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림4

사진 민어 15, 민어

* 민어는 탕이다

 

모든 생선이 그렇지만 특히 민어는 큰 것이 맛이 있다. <자산어보>에는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은 담담하면서서도 달아서 날 것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다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고 했다. 민어 중에서 10㎏ 내외 수치(수컷 민어)를 최고로 친다. 하지만 암치와 수치를 혀끝에서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냥 큰 민어라면 좋다. 민어는 그물에 걸리면 곧 죽는다. 부레를 가지고 있어 물 위에 뜨기 때문에 수족관에 넣어 보관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날 미리 그물을 쳐 둘 수도 없다. 잡은 즉시 피를 빼낸 다음 얼음에 묻어 보관한다. 내장은 젓갈로, 알은 어란이나 찜으로, 쫄깃하고 고소한 부레는 횟감으로 사용한다. 특히 부레는 접착제가 나오기 전에는 소반, 합죽선, 장롱 등 공예품에 민어 부레로 만든 아교풀을 이용했다. <난호어명고>(서유구)에는 ‘부레가 심히 끈적이고 기름기가 있는데 다른 물고기 부레와는 아주 달라 물건을 붙이면 매우 단단히 붙는다. 나라 안 장인들이 사용하는 아교가 모두 이 물고기의 부레이다’라고 했다. 큰 민어는 등살, 꼬리살, 뱃살, 늑간살 등 부위별로 맛을 볼 수 있다. 이때 꼭 챙겨야 할 것이 붉은 살을 살살 걷어내고 나면 남는 껍질이다. 껍질에 밥 싸먹다 논을 팔았다는 ‘민어껍질’이다. 민어는 비늘 말고는 버릴게 없다.

 

남은 뼈는 푹푹 고아서 맑은 탕을 끓인다. 회도 좋지만 민어는 역시 탕이다. 여름 보양식으로 일품은 민어탕이요, 이품은 도미탕이요, 삼품은 개장국이란 말이 있다. 정조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에 올랐던 생선이 ‘민어자반’이다. 숙종이 우암 송시열에게 하사한 것도 민어 스무 마리였다. 민어는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그래서 살아서 못하면 죽어서라도 해야 한다는 민어복달임이다.

 

그림5

민어탕

그림6

민어회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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