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 재발견] 끓여 만든 소금, 증발든 소금 게시기간 : 2026-11-04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6-11-02 11:08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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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을 살펴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는 학문이다. 선조들의 삶은 이야기, 노래, 의례, 놀이, 신앙 등에 전승되는 기억의 역사이다.”
1. 생명 유지 필수품 : 소금 소금은 인체의 생리작용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그런데 마땅히 이를 대체할 것이 없다. 그러기에 소금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귀중한 물질이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체액의 삼투압을 조절하고, 영양소를 이동시키며,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세포를 생산하는 등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급여’, ‘봉급’을 뜻하는 영어 낱말 ‘salary(샐러리)’는 소금을 가리키는 라틴어 ‘Sal’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군단들이 가끔 소금으로 보수를 받은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시대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직접 소금을 굽기도 하면서 그 유통을 관리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닷물을 끓이거나 햇볕에 말려 소금을 얻는다. 이렇게 바닷물에서 얻어지는 소금은 자염(煮鹽)과 천일염(天日鹽)이 있다. 자염은 ‘화염’, ‘전오염’, ‘육염’ 등으로 부르는데,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뒤 끓여서 만든 소금이다. 이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통 소금 생산방식이다. 이를 설명한 기록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보인다. 동해(東海)는 바닷물로 졸이기 때문에 (벌을) 갈아엎어서 조수를 취하는 괴로움이 없지마는, 남해로부터 서해까지는 반드시 상현(上弦)·하현(下弦)의 조수가 물러갈 때를 기다려, 세 차례 소를 멍에를 메어 (벌을) 갈아서 조수를 취하니, 그 괴로움이 밭 다루기보다 배나 됩니다. (東海則以海煮之 無翻耕取潮之苦 自南海至西海則必待上下弦潮退之時 三次駕牛而耕 取其潮水 其苦倍於治田)
- 《世宗實錄》, 二十七年 八月 二十七日 戊辰 -
바닷물을 직접 염분(鹽盆, 소금가마)에 넣고 끓이는 것은 해수직자식(海水直煮式)인데, 동해안에서 주로 행하였다. 갯벌에 염전(鹽田, 소금밭)을 만들고, 소를 이용해 이곳을 반복적으로 갈아엎은 후 농후한 함수[鹽水, 짠물]를 채취한 다음, 솥에 넣고 끓이는 것은 염전식(鹽田式)이다. 주로 서남해안에서는 행했다.
천일염은 ‘태양염’, ‘청염’ 등으로 부르는데, 바닷물의 수분을 햇볕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천일염전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농축한 다음 고농도의 짠물[䀋水]을 제조하고, 이를 결정지(結晶池)에서 결정시켜 소금을 얻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천일염전은 1907년 인천의 주안에 최초로 조성된 후 남한지역에는 남동염전(1921년), 군자염전(1925년), 소래염전(1935년)이 생겼다. 천일염전은 바닷물을 원료로 사용하고 특별한 기계 설비가 필요 없다. 때문에 연료비와 인건비를 아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염전을 만들 수 있는 넓은 개활지(開豁地)가 필요하고 초기 축조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2. 끓여 만든 소금 : 자염(煮鹽) 1896년 전라도(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산재한 섬들을 관할 하기 위해 지도군(智島郡)이 신설된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일원과 영광군 낙월면,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면 및 군산시 고군산군도를 합한 지역이다. 오늘날 신안군의 모태가 되는데, 당시 군청은 지도(智島)에 있었다. 초대 군수로는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이 부임한다. 이때 왕의 명령을 받아 부임하는 과정, 부임 후의 지도군의 실정, 신설된 새로운 지도군의 행정 체계 등을 세세하게 기록한 일기를 남기는데, 이것이 1897년 간행된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鎖錄)》이다. 여기에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방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가 거의 저물어 가는데, 소금 굽는 연기가 보여 막소(幕所)에 이르렀다. 대체로 소금을 굽는 법은 먼저 염등(塩磴)을 쌓고 가로로 나무를 벌려 놓는다. 나무 위에 소나무 잎을 깔고 잎 위에는 갈아엎어 햇볕에 말린 바다흙을 채운다. 물을 대어 거르는데 마치 잿물을 받는 것 같이 한다. 그 아래에는 구덩이가 있어 그것을 저장하는데 염정(塩井)이라고 한다. 막(幕)을 높고 넓게 얽어 위로 연기가 통할 길을 두고 가운데 둥근 구덩이를 일장(一丈) 남짓 되게 판다. 사방 귀퉁이에 흙을 쌓아 기둥을 만들어 가로로 긴 나무를 걸고 그 위에 서까래 나무를 사이사이에 펴두고 서까래 나무 아래는 대나무 장대를 빽빽하게 편다. 또한 쇠갈고리로 서까래 위와 대나무 위에 걸어둔다. 서까래 나무 위에 있는 대나무 장대 위에 먼저 마른 풀을 편 다음 주먹 크기만 한 작은 돌을 깔고 그 다음에 굴 껍질로 만든 회를 바르는데 이를 염부(塩釜)라고 한다. 염정의 물을 길러다가 염부에 채운 후, 솥 아래에 불을 때면 한나절 동안에 물이 구워져 소금이 된다. 소금은 한 솥에 네 석이 나온다. 매일 두 차례 구워져 나온다.”
(日幾是見煮塩烟至幕所 盖其煮法 先築塩磴橫舖以木 木上藉松葉 葉上盛 耕曝海土 注水灑之 如受灰水 捄其下有坑貯之名曰塩井 搆幕高廣 上通烟路中堀圓坑 可丈餘 四隅築土爲柱 橫掛長木其上以椽木間間舖置 椽木下則 以竹竿密舖又以鐵鉤係在椽木上竹竿上 先舖藁草次藉 如拳小石 次塗石花灰名曰塩釜 以鹽井水汲充後 燒火于釜底 則至半日煮水成塩 塩出一釜爲四石 每日二次煮出.) - 《智島郡叢鎖錄》 - 막소(幕所)는 소금을 구워내던 염막(塩幕)을 말한다. ‘염등(塩磴)’은 함수를 추출하기 위해 갯벌을 쌓아 올린 거름막을 말하며, 염분이 농후한 함수를 보관하는 곳이 ‘염정(塩井)’이다. 우리나라에서 소금을 얻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자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크게 염전 갈기, 함수 모으기, 함수 끓이기 등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염전 갈기와 함수 끓이기는 자염 생산방식 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함수를 모으는 방식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렇게 함수를 모으는 과정에 따라 자염을 생산하는 방식을 구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포함한 서해안에서 행했던 자염 생산방식은 함수를 모으는 방식에 따라 태안 등지에 행해졌던 ‘통자락’ 방식, 전남 신안군 일대에서 행해졌던 ‘섯등’ 방식, 그리고 고창군 검당마을 등지에서 행해졌던 ‘섯구덩이’ 방식 등이 있다. 이처럼 함수를 받아내는 장치가 다른 이유는 갯벌 성분의 차이 때문으로 여겨진다. 자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염전을 만들어야 한다. 염전은 소금을 생산할 목적으로 갯벌을 논처럼 만든 것이다. 염전은 며칠 동안 혹은 바닷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 만든다. 이렇게 염전을 만든 후에는 이곳에 바닷물을 뿌려준다.
염전에 물 푸기가 끝나면 소를 이용해 염전의 흙을 써레질한다. 써레는 논밭의 흙덩이를 잘게 부수거나 땅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이다. 써레질을 하면 개흙에 소금 알갱이가 많이 붙는다. 염전은 하루에 두 번 정도 간다. 염전의 흙이 마르면 바닷물을 끼얹고 갈아주는데, 이를 5~6일 정도 반복한다. 소와 써레를 이용해 갈아 말린 흙은 함토라고 한다.
함토가 만들어지면 염도가 높은 함수를 얻어 내기 위해 만든 일종의 거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통자락’, ‘섯등’, ‘섯구덩이’ 등이 그것이다. 장치 안에는 솔가지나 수숫대 등을 넣어 거름망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말린 함토를 쌓아 올린다. 잘 말린 함토 위로 바닷물을 떠다 붓거나 혹은 바닷물이 그 위로 들어오면 함토 속에 있던 소금 알갱이가 농축되어 솔가지나 수숫대 사이로 빠져나와 ‘함정’, ‘쪽’ 등으로 부르는 통으로 모인다.
농축된 함수가 모이면 이를 염막으로 옮겨 끓인다. 염막은 함수를 끓여 소금을 얻는 곳으로 보통 3~4평 정도의 크기로 만든다. 염막은 여러 개의 통나무를 원추형으로 엮어 골격을 만들고, 회(灰)를 넣고 다져 튼튼하게 고정한다. 이렇게 기본 골격을 만든 후 지붕과 벽면은 짚으로 엮은 이엉을 둘러치며, 윗부분은 하늘이 보이도록 가운데를 개방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연기가 나가는 환기통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염막 안에는 소금가마[鹽盆]를 이용해 염수를 끓여 소금을 얻는다. 소금을 굽는 가마는 불에 태운 굴 껍데기나 조개껍데기를 빻아 만든 석회 가루를 물에 개고, 대나무나 짚으로 틀을 엮어 바른 뒤 흙과 함께 구워 납작한 형태로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무쇠나 얇은 쇠판을 이어 붙여 직사각형 또는 타원형의 큰 가마 형태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염수를 끓일 때 처음에는 화력(火力)을 높였다가 함수가 증발하고 소금이 만들어지면 화력을 줄인다. 소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가마 가장자리로 소금을 긁어내 건져 낸 후 물기를 뺀다. 이렇게 하면 소금 만들기가 끝이 난다.
자염을 생산하는 일에는 막대한 땔감이 소요되고 고된 노동이 따른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을 전후해 소금 생산방법은 차츰 천일염 생산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던 자염 생산은 중단되게 되었다. 3. 증발시켜 만든 소금 : 천일염(天日鹽)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와 바람과 햇빛으로 수분과 함께 유해 성분을 증발시켜 만든 가공되지 않은 소금’을 말한다. 즉 바닷물을 바람과 햇볕에 증발시켜 만든 소금을 천일염이라고 하는 것이다. 1907년에 일제에 의해 조성된 주안염전은 대만의 ‘갑종(甲種) 제염법’을 모방한 것이다. 이 방식은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인 후 오로지 햇볕과 바람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결정시키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염전은 공기가 건조하고, 기온이 높으며, 강우 일수와 강우량 등이 적으면서도 바람이 많은 곳에 조성한다. 해방 이후 남한에는 소금 공급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폭등하였다. 대형 염전들이 대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남한은 필요한 소금을 수입하게 되었고, 막대한 외화가 지출되었다. 이에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남한은 염전개발을 민간인에게도 개방하여 소금 증산을 시도한다. 1946년 신안 비금 수림마을에 있던 화염 생산지에 시험 삼아 소규모 천일염전을 조성했다. ‘시험염전’이 그것이다. 이 ‘시험염전’에서 천일염 생산이 성공하자 그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조합을 결성, 같은 장소에 ‘1호염전’을 조성한다. ‘시험염전’이 확대되어 ‘1호염전’이 완성된 것이다. 이 염전은 전라도(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최초의 천일염전이다. 이후 비금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일염 생산지로 발전하였다.
천일염전은 크게 저수지, 제1증발지(난치), 제2증발지(누테), 결정지 등의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 결정지와 증발지 사이에는 비가 내릴 때를 대비하여 구덩이를 파고 지붕을 덮은 간수 저장시설을 두었는데, 이를 ‘해주’라고 한다. 또한 바닷물 배수로와 소금창고 등의 부속 건물도 있다. 예전에는 바닷물을 퍼 올리기 위한 무자위가 있었지만, 지금은 양수기가 이를 대신한다. 또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한 레일을 설치하여 운반의 수고로움을 돕고 있다.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저수지에 담아 두었던 바닷물을 제1증발지에 넣는 것이다. 저수지에서 올라온 물은 태양과 바람으로 증발하면서 하루 또는 이틀에 한 칸씩 이동한다. 제1증발지에서 제2증발지까지 염수가 오는 기간은 날씨에 따라 유동적인데, 햇볕과 바람이 좋은 여름철을 기준으로 하면 보통 7일 정도 걸린다. 저수지의 물이 제1증발지까지 오면 약 8도 정도의 염도를 지닌 물이 만들어진다. 제2증발지에서는 제1증발지에 비해 물의 양이 적기 때문에 증발이 잘 된다. 제2증발지의 쌀누테에 도달하면 15~17도의 물이 만들어진다. 이 물은 결정지에서 소금을 채취한 후 다시 소금을 만들 수 있도록 보충해 주는 ‘뒷물’ 혹은 ‘덧물’이 된다. 보통 소금 결정지에서 소금을 내리고 남은 물은 염도가 27~30도 정도 된다. 이 물을 오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쌀누테의 물을 섞어서 23~25도 맞춘다. 소금을 생산하고 남은 물과 누테에 있는 물을 섞어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도수로 만드는 것은 천일염 생산을 위한 하나의 기술이다. 이렇게 염도를 맞춘 물은 해주에 넣어 보관하고, 결정지를 청소한 후 이 물을 끌어 올려 소금을 만든다. 여름에는 22도에서 25도 정도 되어야 소금이 만들어지고, 가을에는 28도에서 30도 정도 되어야 소금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여름철에는 소금이 빨리 만들어지고, 가을철에는 늦게 만들어진다. 보통 천일염전의 소금 생산 시기는 양력 3월부터 10월까지이다. 예전에는 음력 2월부터 소금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생산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 약 8개월 정도 소금 생산이 이루어지는데, 7, 8월 장마철에는 소금을 생산할 수 없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소금 생산은 6개월 정도에 이루어진다.
처음 천일염을 생산할 염전을 만들 당시 바닥은 맨흙(토판)으로 만들었다. 그 뒤 깨진 항아리나 옹기 조각을 바닥에 깔아 사용했다. 이후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타일 바닥은 증발도 잘 되고, 소금도 잘 거두어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타일의 가장자리가 닳기 시작하면 소금에 검은 것이 남게 되고 소금을 밀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까닭에 타일 대신 장판을 깔아 사용하게 되었다. 4. 건강에 좋은 식품 : 갯벌 소금 전 세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주요 방법으로는 암염 채굴, 천일염, 그리고 자염 및 정제염 등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소금 생산방식은 소금 광산에서 암염을 캐는 방식이다. 세계 총수요량의 2/3를 충당한다. 암염은 바닷물이 증발하여 결정화된 소금이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것이다. 세계 곳곳에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으며, 예로부터 해당 지역의 특산물로 거래되었다. 천일염은 햇볕과 바람, 그리고 공기 등을 이용한 자연 건조법이다. 자염은 맛이 좋으나 노동력과 연료가 많이 들어가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은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1963년 염관리법 제정 때 광물로 분류되었고, 1992년에 천일염을 식품공전에서 제외함으로써 식품으로의 사용을 제한했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1년간 천일염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식약청의 판단에 따라 2008년 3월 28일 식품 등의 기준과 규격을 수록한 식품공전에 천일염이 등재되고, 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식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대부분 천일염이다. 2024년 기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천일염 생산량은 18만 9,000톤으로 전국 천일염 생산의 약 9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신안군을 중심으로 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남해안 일대에 염전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남해안의 천일염전 터는 예전 자염 생산지였던 곳이 많다. 대한제국 말의 《염업조사보고서》 기록을 보면 전라도 해안가는 전반적으로 제염지가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압해도, 지도 등의 도서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또한 1910년 전후 우리나라 자염 생산 현황을 살펴보면 연간 자염 총생산 약 2억 8천만 근 중에서 전남지역은 1억 4백만 근을 생산하였다. 이는 전국 생산량의 약 37%를 차지할 정도이다.
김치를 소재로 한 영화 “식객 : 김치전쟁”에서 극 중 세계적 요리사 ‘배장은(김정은 분)’이 최고의 소금을 얻기 위해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과정이 나온다. 사람의 건강은 물론이고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소금이 깨끗하고 건강한 갯벌에서 만들어질 때 그 효능이 극대화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제염과는 다른 천일염의 우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우리나라 청정 걋벌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이 비교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전통 소금에 관한 관심과 보존 노력, 나아가 현대적인 재현과 상품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도움받은 자료
《世宗實錄》
『전남사진지』, 목포신보사, 1917. 吳宖黙, 『智島郡叢瑣錄』, 목포대학교도서문화연구소․금호문화재단 刊, 1990. 고광민 외, 2006, 『조선시대 소금생산방식』, 도서출판 신서원. 김준, 「전통소금의 생활사적 함의와 지역별 생산방식」, 『천일염, 김치 그리고 발효식품에 관한 산업심포지움』, 목포대학교 식품산업지역혁신센터, 2007. 박정석, 「천일염의 생산과정과 유통체계, 그리고 정부정책 : 전남 신안군 비금도의 사례를 중심으로」, 『도서문화』 34집,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09. 박종오, 「‘섯구덩이’를 이용한 자염(煮鹽) 생산방식 고찰」, 『도서문화』 31집,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08. 유승훈,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 민속』, 민속원, 2008. 최성환, 「비금도 천일염전 개발과정과 사회적 확산」, 『도서문화』 40집,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12. 국사편찬위원회 (https://sillok.history.go.kr/) 신안군청 (https://www.shinan.go.kr/)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e뮤지엄 (https://emuseum.go.kr/) 글쓴이 박종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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