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와 옛편지] 택일(擇日)한들 만사형통이랴 게시기간 : 2026-10-08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6-10-06 13:3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고문서와 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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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고르는 사람들
택일(擇日)이 하죄(何罪)? 고부간 불화가 혼인 택일을 잘못하야 혼례식을 거행한 까닭이라고 5간이나 동거해 오던 부부가 또 다시 길일을 택하야 혼례식을 성대희 거행하게 되었다.
새 유행(流行) “사주팔자 정해 놓고 낳자” 택일(擇日) 출산(出産) 태어난 일시를 가지고 아기의 장래 운세를 풀어보는 것은 이제 옛말, 출산 전에 점을 쳐 소위 「좋은 날 좋은 시」에 맞춰 아기를 낳는 경우가 많아 화제가 되고 있다.
출산 택일로 팔자를 만드는 헛헛한 사회 -2016년 12월 3일, 한국일보-
동아일보, 1933년 2월 21일 5면,
경향신문 1986년 5월 10일. 7면. 제왕절개 택일 언제? AI에 아기 사주 맡기는 부모들 인공지능(AI) 사용이 보편화한 2025년 이후 출생아 가운데 상당수의 공통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에 달한 제왕절개 출산율 때문이다. 태아가 모태에서 분리되는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예비 부모들이 출생 일자와 시간을 '사주 AI' 도움을 받아 결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산모 희망과 달리, 시부모 혹은 친정 부모가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바람에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도 확인되고 있다. 택일은 날을 가려서 고르는 일이다. 좋은 날에 행하는 일이 그 날의 좋은 기운을 받아 잘 성사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택일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지구 어느 곳에서나 행해진다. 1933년 2월 21일 기사는 결혼한 날짜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나빴고 그래서 고부간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 기운은 받을 수 있는 날을 잡아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이다. 1986년 즈음이면 출산과 관련한 의술이 발전하여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 놓아도 바로 그 시각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2026년 현재의 의술은 40여 년 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정해진 시각에 아기가 태어나게 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 결혼, 출산 등은 개인 일생에서 중요한 지점들이다. 결혼 후나 세상에 태어난 이후는 그 이전의 삶과 사뭇 달라진다.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면 좋고, 적어도 나쁜 쪽으로 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과학적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드는 21세기에도 택일의 효능에 대한 믿음은 가시지 않는다. 특히 출산과 관련한 택일 행위는 더 증가하는 듯 보인다. 어느 맘카페에는 2022년 기준으로 600건 이상의 출산 택일 질문이 올라왔다고 한다. 정해 놓은 시각에 맞춰 출산하는 데에 호의적인 의사를 찾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택일의 유혹은 강력하다. 날가림의 기록들 1930년 이전에는 어땠을까. 아마 장 담그는 일이나 집 수리, 도랑 파기와 같은 일상의 일부터 상장례나 혼례와 같은 일생의 중요한 일까지 날을 가리는 일은 당연했다. 과거 시험 잡과에서도 ‘음양과(陰陽科)’를 두고 명과학(命課學)을 배우게 했다. 정조는 명과학의 소임이 국가가 행하는 일에 대해 길일을 가리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택일과 관련한 문헌이나 정보 등이 유통되었다. 『선택요략(選擇要略) 『선택기요(選擇紀要)』 등이 편찬되었고 홍만선은 『산림경졔」를 엮으면서 「선택(選擇)」이란 항목을 별도로 뽑아 집 수리, 혼인 등의 일에서 길한 날과 피해야 할 날을 알렸다. 장례, 혼례는 일생 중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택일은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혼례, 장례, 새 집 들어갈 때 등의 일을 행하게 되면 날을 가려 뽑았다. 택일기라고 하여 해당하는 일을 치르는 날과 시간만 간략히 기록하지 않았다. 혼례와 관련되는 경우 혼례식을 치를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것으로 연길(涓吉)이라고도 하는데 식을 치르고 납폐(納幣)하는 날짜만 간략하게 적기도 하지만 다른 내용도 기록한다. 신랑과 신부가 태어난 해의 간지, 혼례식 날짜와 시간도 기록했다. 또한 혼례식 이후 신부가 시집으로 가 정식으로 인사하는 우귀(于歸)에도 택일을 했다. 여기에도 신랑 신부의 생년(生年) 간지를 쓰며,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야 할 시간, 대문을 통과할 때 어느 방위로 들어가는지, 이 때에 잠시 피해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기록한다.
왼쪽:혼례식과 납폐 날짜만 기록
오른쪽: 우귀에 대한 택일 기록 건(乾) 을해(乙亥)
곤(坤) 임신(壬申) 우귀(于歸) 3월 16일 하교(下轎), 입문(入門) 같은 날 묘시(卯時) 오시(午時) 저향(抵向), 재소(宰所) 동쪽과 서쪽이 알맞다 주당(周堂) 꺼리는 것 없음. 이렇게 적었다면 신부가 시집으로 가는 길일은 3월 16일이다. 그런데 가마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갈 시간은 묘시나 오시이다. 아침 5시에서 7시 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이다. 이 시간에 가마에서 내려 시집 대문을 통과해야 길운을 맞이할 수 있다. 주당에는 이 일이 행해지는 사이에 꺼려야 할 사람들을 쓰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 시간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없다.
집을 짓고 처음 들어가는 날을 고를 때에도 이른바 입택기를 썼다. 집에 들어가는 날짜를 가려내는 일인데 그 집에 들어갈 사람들이 태어난 해의 간지까지 쓰기도 했다. 황종윤(黃鍾允) 집안에 있던 입택기를 보면 집 주인 부부, 아들과 며느리, 딸, 손녀는 물론 여종의 생년 간지까지 기록하였다. 그리고 8월 29일 사시(巳時) 곧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들어가면 좋다고 했다.
황종윤 집안에 있는 입택기 조선시대 상례와 장례를 중시했던 만큼 장례와 관련한 택일 기록인 장택기가 많은 편이다. 장택기에 기록하는 항목은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고인에 대한 정보, 시신을 묻을 장소 및 고인의 가족들의 생년, 장례 날짜 및 장례 때 해야 할 일들의 시각, 길한 방위 등은 반드시 기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선명(乾仙命) 신미(辛未) 토(土)
1872년에 작성된 남평문씨 집안의 장택기 이것은 1872년에 작성된 장택기 내용이다. 시신을 안장하는 때는 동치 11년 곧 1872년 10월 19일에 하라고 썼다. 개토와 안금은 시신을 묻을 곳을 정리하고 흙을 파내어 시신을 넣을 수 있도록 구덩이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일은 11월 13일에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 깊이는 3척 1촌이라고 하니 요즘 쓰는 단위로 환산하면 약 1미터 정도로 추정된다. 계빈은 시신이 든 관을 빈소에서 내오는 일인데 서쪽부터 먼저 손을 대라고 했다. 흙을 취하거나 상여를 머물러 둘 곳으로 ‘갑・경방(甲庚方)’을 뽑았다. 장지로 옮겨 온 상여를 갑・경방 쪽에 놓고, 관을 광중(壙中)에 내린 후 구덩이를 본격적으로 메우기 전에 넣는 흙을 갑・경방 쪽에서 가져다 쓰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관을 내올 때나 상여를 정지해서 놓을 곳,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 제일 먼저 넣을 흙조차도 아무 곳부터 만지거나 아무 곳에 놓지 않았다. 되도록 길하다는 쪽의 기운을 빌어 일을 잘 마무리하려는 뜻이 있다. 길한 방위에 있는 흙을 골라 쓰는 일은 왕실에서도 점을 쳐서 시행했다. 1899년에 수릉(綏陵)을 개수할 때 ‘갑방, 경방의 흙을 쓰는 것이 길하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 주당(周堂)은 구덩이를 파거나 안장할 때 꺼리는 살인데 여기서는 해당하는 이가 없다고 했다. 호충(呼冲)은 죽은 이가 불러서 같이 가고 싶어하는 살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기록에서는 적충(的冲)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태어난 해가 임술년, 경자년, 임자년, 병자년 등이 해당된다. 장지에 간 사람 중에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관을 내리는 때에 잠시 다른 곳으로 피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명은 말 그대로 명(命)을 만든다는 뜻으로 무덤을 조성하는 연, 월, 일, 시를 가려 뽑아 적은 것이다. 동치 11년 1872년의 간지는 임신년이어서 조명의 맨 앞에 임신으로 썼다. 관을 구덩이에 내리는 일도 아무 때나 하지 않도록 했다. 미시(未時)에 하라고 했으니 지금 시간으로 치면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하관해야 한다. 이를 보면 장택기는 혼례나 새 집 들어가는 입택의 기록에 비해 기록하는 항목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더 신중하게 치러야 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택일, 어떻게 생각할지 : 복 받기? 흉 피하기? 택일을 하고 그것을 꼭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택일기에는 일을 시행할 날짜와 시간 말고도 피해야 할 사람, 시간, 방위 등도 함께 알려준다. 우귀 택일 기록에 ‘주당’ 항목을 넣고는 ‘없음’이라고 쓰고, 장택기에서는 하관할 때 다른 곳으로 잠시 피해 있어야 할 사람들을 지목했다. 길한 때를 골라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택일기에 쓰인 내용대로 신중하게 하는 것은 이왕 하는 일,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최소한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이른바 피흉추길(避凶趨吉)하려는 마음 곧 복은 들이고 흉은 피하려는 마음이다. 택일기에 쓰여진 대로 하면 적어도 해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안심할 수 있다. 택일이 가진 좋은 효과다. 그런데 가려 뽑은 날짜와 그 시간에 그 일을 꼭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장사지내는 기간이 정해졌는데 하층민들이 택일한 날에 맞춰 장례를 미루어 장기(葬期)가 길어지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은 택일로 정한 날짜와 시간을 맞춰줄 수 있는 결혼식장을 찾는 수고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사주를 선물한다면서 출산 날짜와 시간을 인위적으로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미루어야 할 때 갈등이 생긴다. 결혼이나 출산 등은 일상이 아닌 일생이 걸린 택일이다. 더 꼭 지켜야한다고 여길 터이니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선택기요』
『선택요략』
『천기대요』
이미지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또 가려 뽑은 날짜와 시간이 늘 똑같지 않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택일서로 활용되었던 『선택기요』 『선택요략』, 『천기대요』 등에서도 해석이 각각 다르거나 길흉에 대해 서로 반대로 해석한 것도 있다고 한다. 택일을 잘못해 고부간 사이가 나빠졌다고 여겨 또 택일했는데 여전히 나쁘다면 어떨까. 좋은 사주라고 받아 출산했는데 아이의 삶의 수준이나 형편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어떨까. 조선 후기 사람인 윤증(尹拯)은 『천기대요』를 두고 ‘화와 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잘 되면 복이라서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되리라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고 여겼다. 그러니 택일(擇日)을 하면서 어떻게 대할지 택일(擇一)할 마음 준비도 필요할 듯하다. 복 받기 위함이라고 여길지 아니면 최소한 흉함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할지. <도움 받은 글들>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한국학자료포털 https://kostma.aks.ac.kr/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 호남권한국학자료포털 http://203.254.129.108/emuseum/service 김만태(2007), 「역서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김만태(2009),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정신문화연구』 114, 김향숙(2022), 「공주 초려가 소장 장택기 사례 연구」, 『고문서연구』 60, 한국고문서학회. 마효정(2022), 「현대 사회의 출산택일 문화에 대한 연구」, 『문화와 융합』 44(6), 한국문화융합학회. 윤장섭(1975), 「한국의 영조척도」, 『건축』 19(2), 대한건축사협회. 이상민,박정해(2025), 「조선시대 혼례 택일 문화와 선택서의 구성 차이」, 『인문사회과학연구』 7(6), 국제인문사회연구학회. 이수동(2016), 「조선후기 선택서의 혼례택일 방법론 고찰」, 『실천민속학연구』 28, 실천민속학회. 이수동(2022), 「조선후기 혼례택일 연구」, 『동양문화연구』 36,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이혜림,김윤정(2020), 「산모의 출산 택일 경험에 관한 융합적 연구」, 『문화기술의 융합』6(2), 국제문화기술진흥원. 글쓴이 김기림 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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