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성좌] 일가(一家)와 함께 독립운동에 나선 이윤호(李允鎬, 1898~1931) 게시기간 : 2026-06-18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6-06-16 09:23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항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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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 및 처가 식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제강점기 부자나 형제가 함께 독립운동에 나선 사례는 종종 있지만 본가 및 처가 식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경우는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소개하는 이윤호 일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기독교계인 광주 숭일학교를 졸업했고, 3·1운동 당시 부친은 교회 장로이자 선교사의 조사(助師였)으며, 동생과 처남은 숭일학교 학생이었고, 장인은 숭일학교 교사였다. 즉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그와 함께 활동한 다른 동지들의 상당수도 그랬다. 이윤호는 3·1운동(1919)과 대동단사건(1920)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부친 이주상은 3·1운동과 국민회사건(1920), 동생 이창호는 3·1운동, 장인 강릉유씨 유한선은 국민회사건, 처남 유계문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부인 유덕례도 대동단사건으로 검속된 바 있었다. 그러다보니 3·1운동 공판에서 이윤호는 부친과 동생, 처남과 함께 법정에 섰고, 국민회사건 공판에서 부친과 장인, 즉 사돈들이 법정에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들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적비」와 신문기사에 나오는 행적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애국지사 광산이공윤호공적비」에 따르면 이윤호는 1898년 8월 3일 광산이씨 이주상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1928)에 따르면, 부친은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기독교에 입교하여 1909년 귀국 후 본촌면 일곡리에 일곡교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윤호와 동생이 기독교계 숭일학교에 다닌 것은 자연스러웠다. 3·1운동 당시 그의 주소는 전남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였다. 숭일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을 도우며 농업에 종사했다고 짐작된다. 다음은 공적비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公)이 고종 무술 1898년 8월 3일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재질이 청수(淸秀)하였고 자라서 우월한 성적으로 광주숭일학교를 졸업하여 학식이 밝았다. 1919년 3·1운동의 여파가 방방곡곡에 확산됨에 공은 약관의 나이로서 유계문·최경동·김금석 여러 동지 및 아우인 도호(都鎬)와 더불어 독립선언문을 각처에 배포하여 농민과 학생들을 선동하여 만세장소로 인솔하다가 체포령이 내림에 1년 이상을 피신하였으므로 궐석판결로는 7년을 언도받았고 그 후 다시 독립거사에 필요한 군자금을 한준호·정용택·이준용 등과 함께 모금하던 중 왜경에 피체되어 징역 3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마친 뒤 후유증으로 1931년 7월 23일에 세상을 마쳤으니 나이 33세였다.
여기서는 이윤호가 1898년생으로 나오는데 1919년 판결문에는 24세로 나와 조금 차이가 난다. 그리고 3·1운동 때 1년 이상을 피신했으며 궐석재판에서 징역 7년이 언도됐다는 부분은 오류다. 그는 3·1운동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0년 대동단사건으로 피신했다가 궐석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체포되어 징역 3년이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동아일보』 1922년 6월 19일자에는 “한 집이 젼부 독립운동을 한 리윤호는 령광에서 잡히어”라는 부제와 함께 「신덕영 등 연루자」란 기사가 실렸고, 여기에는 그 일가의 독립운동 관련 행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제 그 기사의 관련 부분을 소개하면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광주 3·1운동을 주도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 리윤호는 자긔의 온 가족이 모다 조선독립운동을 위하야 몸을 희생코저 하는 결심으로써 삼작년(주: 1919년) 3월에 조선독립만세의 운동이 전 조선에 일어나는 당시에도 자긔와 자긔의 부친 리주상과 아우 리창호 처남 류계문 등 네 사람이 함ᄭᅴ 광주에서 일어나는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야 다만 자긔 부친만 집행유예 처분을 바다 집에 ᄯᅥ러저 잇셨고 세 사람은 대구감옥에서 각각 일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야 방금 복역 중인대 …
널리 알려졌듯이 광주에서는 1919년 3월 10일 만세시위가 일어났으며 북문안교회 교인들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 학생 등이 이를 선도했다. 시위의 큰 줄기는 양림리에서 출발한 행렬과 일곡리에서 시작된 행렬이었으며, 이윤호와 부친은 후자의 행렬을 선도했고, 처남과 숭일학교 학생이던 동생은 전자의 행렬에 참여했다. 피검자 명단에는 나오지 않으나 숭일학교 교사인 장인도 참가했을 것이다. 이 만세시위에는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 대부분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부친 및 동생, 처남과 함께 법정에 선 이윤호는 1919년 4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나 8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동생과 처남도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부친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어 석방됐다. 위의 기사에서 부친을 제외한 3명이 “대구감옥에서 각각 일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졌다는 부분은 오류로 보인다.
부친과 장인이 국민회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집에 잇는 자긔의 부친 리주상은 전긔 리윤호의 장인되는 류한선과 갓치 평양에서 일어난 국민회와 련락을 하야 광주디방법원에서 국민회보를 반포하는 동시에 그 회에 회원을 다수히 모집하야 독립운동의 목뎍을 일우려 하다가 발각되야 ᄯᅩ한 대구감옥에서 복역하게 됨으로 …
자식들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1919년 4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부친 이주상은 사돈 유한선과 함께 평양에서 파견된 장공섭과 협의한 후 임시정부 후원을 위해 평양에서 조직된 국민회에 7월 가입했다. 이들은 김양숙·최종렬·허원삼 등 광주의 기독교인을 규합했으며, 10월까지 나주 산포면과 다도면의 기독교인들도 포섭했다. 이들은 회원과 자금 모집에 힘쓰던 중 12월 경찰에 체포됐으며, 1920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이주상과 유한선은 모두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윤호는 1919년 7월경, 동생과 처남은 9월경 출옥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제는 부친과 장인이 투옥된 것이다.
대동단이 발각되자 피신하고 아내는 고초를 겪다 그의 부친과 장인이 감옥에 드러온지 얼마 못되여 만긔출옥으로 집에 도라온 리윤호는 자긔의 부친과 장인은 역시 감옥에서 나오기도 전에 ᄯᅩ한 조선독립을 위하야 희ᄉᆡᆼ하려는 정신을 변치 아니하고 활동을 계속하야 재작년 5월부터 대한민국 군제(軍制) 특파원 한준호·박문용·정용ᄐᆡᆨ·리재치 등과 련락하야 친일파와 부호를 협박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한준호 등이 서울로 간 후 잠시 활동을 중지하얏다가 재작년 가을에 광주를 중심으로 부근 각군에 크게 활동하야 일시 젼라남도 사람의 이목을 놀내이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든 신덕영·로형규 등 열네 사람으로 조직되엿든 군자금 모집단과 결탁하야 군자금 모집을 위하야 각 방면에 활동하든 중 신덕영 일파가 담양경찰서의 손에 검거되자 전긔 리윤호는 그만 종적을 감추는 동시에 리윤호의 안해되는 류덕례만 담양경찰서에 붓들니여 무수한 고초를 당하엿스나 종시 자긔 남편의 거처를 대여주지 아니하엿슴으로 리윤호는 종시 톄포를 당하지 안코 …
부친과 장인이 수감 중인 1920년 5월, 이윤호는 다시 독립운동에 나섰다.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박문용·신대선·한준호 등과 함께 권총(장난감이라는 설도 있다)을 휴대하고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한 것이다. 7월에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 직후 국내에 잠입한 신덕영과 함께 같은 활동을 벌였는데, 이윤호는 신덕영이 작성한 대동단(大同團) 총재 김가진의 명의로 포고문의 취지에 동조했다고 한다(그 때문에 ‘대동단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10월에는 그의 집에서 회합했으며, 이 무렵 그는 ‘김인수(金仁洙)’란 가명을 쓰기도 했다. 이들은 일곡 및 전남 일대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했으나, 신덕영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탄로났고 이윤호는 도주했다. 경찰은 아내 유덕례를 경찰서에 인치하고 남편의 행방을 캐물었으나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으면서 남편 대신 고초를 겪었다. 궐석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은신 중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르다 작년 4월 27일에 광주디방법원에서 신덕영 등이 공판을 바들 ᄯᅢ에 궐석판결로 7년 징역의 처분을 밧고 이내 몸을 피하여 도라다니다가 지난 8일에 령광경찰서의 순사와 한참동안 크게 격투를 한 ᄭᅳᆺ헤 톄포되여 지난 15일에 광주디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기엇다는대 리윤호는 고장신립(故障申立)하리라더라.
1921년 4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는 이윤호에게 징역 7년이란 중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은신 중이던 그는 1922년 6월 영광에서 경찰과 격투 끝에 체포됐고, 1922년 9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그런데 일제가 작성한 「조선독립군자금모집원의 검거」(1920.12.08., 高警 제87855호)를 보면 “전라남도에서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원을 참칭하다가 검거”된 인물들의 명단이 나온다. 그들 중 이윤호 일가는 다음과 같다.
여기를 보면 동생과 아내, 그리고 장인도 함께 검거된 것으로 나오는데, 장인인 유한선이 ‘劉桂潤’으로 나오는 점은 의문스럽다. 이명(異名)일 수도 있겠지만 아들 유계문(劉桂文)과 같은 항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장인은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었으니 다시 검거됐을 리도 없다. 아마도 처남 ‘劉桂文’의 오자가 아닌가 싶다. 이윤호가 잠적했으니 부인은 물론 수형 전력이 있는 동생과 처남도 함께 인치되어 조사받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들이 연루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기에 검사국에 송치되지는 않은 것같다. 출옥 후 사회운동에 투신하다가 요절하다 1924년 12월 감형으로 출옥한 이윤호는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그는 1925년 3월 집행위원에 선임됐고, 『조선일보』 광주지국 기자로도 활동하면서 1925년 4월 서울에서 열린 전조선기자대회에 참석했다. 그해 9월 광주노동공제회 정기총회에서 다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으며, 광주기독교청년회에서 겨울 농한기를 이용하여 개설한 농촌야학의 강사로도 활동했다. 1927년 10월 창립된 신간회 광주지회에 참여하여 12월 신간회 광주지회 임시대회에서 검사위원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1931년 7월 33세, 앞서 동생은 역시 3월 29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부친은 1948년 5월, 장인은 1950년 10월 별세했으니 본의 아니게 ‘불효자’가 된 셈이다. 사인은 분명치 않으나 공적비에 나오듯이 고문들 받고 옥고를 치른 ‘후유증’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부친에게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 장인에게도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 동생에게는 2006년 건국포장이 추서됐으나 처남은 아직 추서되지 못했다. 글을 맺으며, 남편은 물론 시아버지와 시동생, 그리고 친정아버지와 친정동생까지 옥바라지하며 겪었을 부인 유덕례의 고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담이지만, 1923년 7월 담양예배당에서 열린 광덕학교 여학생 학예회 관련 기사(『조선일보』 1923년 7월 27일 「광덕여학교 학예회」)에는 창가를 부른 ‘劉德禮’가 나온다. 전후 문맥으로 미루어 찬조출연으로 보이는데, 광주 일곡과 담양이 그리 멀지 않으므로 이윤호의 부인과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그녀 역시 시댁 식구들이 다니는 일곡교회 신자였을 것이며, 부친이 양림동에 거주하는 숭일학교 교사였으니 당연히 수피아여학교 출신이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1917년 3월 수피아여학교 제3회 졸업생 7명 중에 ‘劉德禮’가 나온다. 글쓴이 한규무 광주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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