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 하나의 이야기] 수묵의 담백함과 은은한 황색이 어우러진 비파의 정취 취당 장덕의 <비파도> 게시기간 : 2026-06-05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6-06-02 11:5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한 폭의 그림, 하나의 이야기
|
|||||||||||||||||||
|
노란색의 타원형 열매와 잎의 생김새가 현악기 비파(琵琶)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의 비파(枇杷)는 따뜻한 지역, 전라도 등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비파는 가을에 꽃망울을 밀어 올리고, 겨울에 꽃을 피우며, 봄에 열매를 맺어 초여름 노랗게 익는다. 비파 열매는 기원전 2세기부터 ‘비파십과(枇杷十果)’라고 해서 중국 남부의 10대 과일로 꼽혔다. 고려말 정몽주가 중국 사신으로 방문했을 때, 중국 강소성 남경 인근의 양주(楊州)에서 비파를 맛보고 남긴 시가 있다.2)
비파, 그림이 되기까지 비파가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중국 송대(宋代)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송대 화원화가 임춘(林椿, 12세기 활동)의 <비파산조도>는 동박새 한 마리가 비파열매를 쪼려다가 그 위에 개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리를 돌려 자세히 살펴보는 장면을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그림 2). 노랗게 익은 열매와 갉아먹은 이파리 등을 구륵법으로 묘사하고 노란색과 초록색 등으로 설채하였다. 송대 화원화 특유의 세밀하고 정교한 화조화의 사실주의적인 면모와 서정성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명·청대로 이어지면서 비파는 매화, 포도, 석류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과실화 소재로 자리 잡는다.
그림 2 임춘, <枇杷山鳥圖>, 남송, 비단에 채색, 26.9×27.2cm,
사진 1 비파열매
그림 3 이한복, <비파난화>, 1925년, 비단에 담채, 40.4×53cm, 개항기 문신 김기수(金綺秀, 1832-1894)가 1876년 수신사로 가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기록한 『일동기유(日東記游)』에 비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비파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가 없으니 대개 겨울에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가 열렸으며, 품질이 연하여 먼 곳에는 가져갈 수가 없다. 빛깔은 약간 노랗고 맛은 달고 향기가 나서 입에 들어가매 아주 시원하였다. 한 가지에 여러 꼭지가 달려서 당체(棠棣:산앵두나무)의 등속과 같았다.”라 하였다.3)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비파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사진 1). 우리나라에서 비파가 회화의 소재로서 등장한 때는 조선 말기 고동기나 도자기에 꽃가지, 과일, 문방기물을 그린 기명절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승업은 조선 후기 문인들이 그렸던 문방구류와 고동기 등에 다양한 소재를 더하고, 수묵에 채색을 곁들이며 길상성과 장식성을 강조한 기명절지도 양식을 창안해 당대에 크게 유행시켰다.4) 그가 제작한 <기명절지10폭병풍>(서울대박물관 소장)에는 10폭 중 4폭에 비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러 소재 중 하나로 비파가 그려지는데, 노랗게 익은 열매 또는 아직 덜 익은 초록색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거나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5) 안중식과 조석진이 합작한 <기명절지10폭병풍>에서도 노란색의 비파열매가 달린 절지의 형태로 그려졌다. 비파는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1897-1940)의 <비파난화>에서 본격적인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그림 3). 함께 그린 난꽃은 구륵법으로 묘사했지만 비파는 색의 농담과 번짐을 사용한 몰골법으로 표현하여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이후 비파는 문인화의 단독 주제가 되어 많은 화가들에게 선호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파를 많이 그린 화가가 취당 장덕이다. 비파가 익어가는 시간 남쪽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비파는 목포의 시목(市木)이라 한다.6) 장미과의 상록수로 10m 정도 자라는 비파의 열매는 부귀와 불변을, 잎줄기는 우아한 품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비파는 집 안에 두고 키우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계절 늘 건강하라”는 축원을 담고 있다고 하여, 자주 제작되는 화제이기도 하였다. 해방 후 목포로 이주해 살았던 장덕은 이곳에서 비파를 많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만큼 많이 그렸다. 장덕이 비파를 많이 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중국의 근대 서화가 오창석(吳昌碩, 1844-1927)이 그린 비파나 파초 그림을 좋아해서라고 하였다.7)
그림 1-1 장덕, <비파도> 부분
그림 4 장덕, <비파도>, 1976년, 종이에 수묵담채, 41×64.5cm, 목포대학교박물관 <비파도>는 비파나무 한 가지가 화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 대각선으로 뻗어 올라가다 다시 왼쪽으로 꺾여 있는 모습이다(그림 1-1). 몰골법으로 가지와 비파잎을 표현하였으며, 짙은 먹으로 잎맥을 묘사하였다. 화면 아래쪽 푸른색의 담채로 아직 익지 않은 열매를 그리고, 화면 위쪽에는 노란색의 담채로 둥글게 맺혀 있는 열매를 그렸다. 노랗게 익은 비파열매 밑 부분에는 짙은 먹으로 별 모양을 그려 넣어 비파열매의 특징을 살렸다. 수묵의 느낌을 강조해 제작한 비파도는 이외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목포대학교박물관 소장 <비파도>는 비파열매와 나뭇가지에 원근을 주어 표현한 작품이다(그림 4). 비파잎과 줄기는 짙은 농묵으로 표현하고, 뒤쪽의 가지는 담묵과 담채로 멀리 있는 것 같이 표현하였으며, 비파열매에 초점을 맞춰 멀고 가까움의 효과를 강하게 주었다. 노란색과 푸른색 담채가 화면을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근경 대상의 포커스를 맞추는 듯한 표현법은 <비파도> 외에 매화도 같은 그림을 제작할 때도 사용되었다(그림 5, 6).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짙은 먹으로 강조하고 뒤에 있는 대상은 엷은 담묵으로 표현하여 마치 카메라로 포커스를 맞춰 찍은 듯한 거리감을 보여주는데, 장덕이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각된다.
그림 5 장덕, <매화도>, 1975년, 종이에 수묵담채, 32×124cm,
그림 6 장덕, <매화도>,
그림 7 장덕, <매화도>, 종이에 수묵담채, 화조와 절지화에 능했던 목포의 화가 취당(翠堂) 장덕(張德, 1910-1976)은 근현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전남의 전통화단에서 활동했던 한국화가이다. 초명은 장운봉(張雲鳳)이었으나 해방 후에 장덕으로 개명한 그는 목포화단에서 남농 허건과 쌍벽을 이루었다. 서울 출신으로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1928년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 낙청헌(絡靑軒)에 들어가 한유동,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그림을 배웠다.8) 이후 1936년 후소회(後素會)가 만들어질 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은호에게 회화수업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는 채색화 위주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에 <야포(野圃)>를 출품하면서 입선하였고, 이후 1931년 제10회에는 <토(兎)>, 1932년 제11회에 <한정(閑庭)>, 1933년 제12회에 <여수(旅愁)>, 1936년 제15회 <교외만추(郊外晩秋>), 그리고 1941년 제20회에 <자수(子守)>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대체로 이 시기 작품들은 김은호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때는 장운봉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장덕이 조선미전에 <야포>로 첫 작품을 출품했을 때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예민한 감각을 가진 필치다. 바위돌을 실패하지 않았던들 훌륭한 작품이 될 걸 그랬다.”라 평가했다.9)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 실린 장덕의 작품들은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그의 표현력과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10) <야포>는 화면 왼쪽 덩굴식물 사이에 여우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살짝 고개를 들어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그림 7). 덩굴은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며 덩굴 사이로 김용준이 바위돌이라 한 검은색 덩어리가 보이는데, 돌이나 바위라기보다는 수박과 같은 열매로 짐작된다. 아무래도 흑백도판이라 색채의 표현이나 농담 등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부드러운 필치로 여우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생김새를 묘사한 그의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장덕은 <야포>를 비롯해 동물그림으로 조선미전에 연달아 출품했는데, <토>와 <한정>은 토끼와 염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제작한 작품들로 연달아 입선하였다.
그림 7 장덕, <야포>,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도록
그림 8 장덕, <여수>, 1933년, 제12회 조선미술전람회도록 1933년 제12회에는 인물을 그려 출품했다(그림 8). 이 작품으로 장덕은 여러 평론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나혜석은 “장운봉 씨의 <여수>, 양아(兩兒)에게 여수(旅愁)의 표정이 충분이 나타나 있다. 그림 같은 그림이다. 자미(滋味)있는 ‘모티브’다. 호감을 갖게 된다.”라는 평과11) “내가 선전을 별견(瞥見)한 가운데에 제일 느낌을 많이 준 작은 오직 씨의 작 하나이었다. (중략) 그림의 솜씨도 하나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중략) 특선이 제일 잘 된 것을 증명함이라면 이 작(作)은 특선은 물론하고 대특선의 삼자(三字)를 가해 준대도 유위부족(猶爲不足)일 것이니 독자는 한번 다시 씨의 작을 잘 눈을 씻고 보라!”는 평도 있었다12). 이와 함께 “장운봉 씨의 <여수>는 필자의 가슴을 울리어 준 작품이다. 누구의 작품보다도 제일 인상이 깊은 작품이다. (중략) 이 작품을 통하여 작자의 심경을 존경하는 바이니 작자는 건실한 사상과 정신으로서 더욱더 정진하라. 밀레의 <만종>의 위대한 점이 화기(畵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도 그 정신에 있는 것이다.”라면서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3) 화면의 구성이나 묘사뿐만 아니라 작품에 내포된 의미와 감정의 전달에 대한 화평이다.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일본화의 기법을 보여주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한 어린 두 인물에서 시대의 어두움과 정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장덕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장덕은 1933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였다. 이후 1936년 조선미전 출품과 후소회 창립전에 참여했다. 1930년대 후반 장덕은 목포에서 결혼을 하고 목포에 정착하였다.14) 당시 목포는 개항장으로서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상업자본과 근대문물이 대거 유입된 근대도시였다. 목포로 이주한 장덕은 1946년 한국예술협회 목포지부 창설에 참여하였고, 1959년 10월 목포미술협회에 회장에 허건, 장덕이 부회장으로 함께 활동하였다. 1966년에는 예총 목포지부장을 맡으며 허건과 함께 목포화단을 이끌었다.15) 해방 후 국전(國展)에서 소외된 후소회원이 주동이 되어 발족한 백양회(白楊會)에 창립회원으로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였고, 1962년 동화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지방화단 뿐만 아니라 중앙화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장덕은 목포로 내려온 후 작품 경향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초기 호분을 쓰는 공필의 사실적인 세필의 채색 인물화와 동물화, 풍경화 대신 전통 수묵담채의 화훼와 화조화, 문인화 등을 제작하였다. 주로 매화나 비파, 기명절지, 사군자와 비파, 파초 등 소품위주의 작품을 그렸으며, 산수화의 경우 많이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채색이 가미된 산수화를 남기기도 하였다(그림 9). 그가 이렇게 회화주제를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남종문인화 전통이 강한 호남에서 수묵담채의 사군자나 화훼·화조화 등 전통적 소재들을 택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목포화단의 또 다른 흐름, 취당 장덕 목포화단은 1946년 허건이 남화연구원(南畵硏究院)을 설립한 이후 아산 조방원, 청당 김명제, 백포 곽남배, 도촌 신영복, 우남 이옥성 등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며 크게 성장하였다. 이들은 남종문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실경을 중시하는 근대적 조형세계를 추구하였고, 국전 입상 등을 통해 목포화단의 중심 흐름을 이끌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장덕은 남화연구원 출신 화가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그림 10 장덕, <벽오동>, 종이에 수묵담채,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소장 그는 공필의 채색화에서 벗어나 수묵담채를 바탕으로 한 화훼·화조화와 사군자 등 문인화 소재를 즐겨 다루었으며, 섬세한 필치와 담담한 채색이 어우러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형성하였다(그림 10). 이후 1976년 목포 유달동 자택에서 타계할 때까지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장덕의 목포 정착과 활동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짧은 시기 동안 지역 화단으로 성장한 목포화단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1) 취당 장덕의 <비파도>와 <벽오동> 두 작품은 목포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작품을 실견하고 이미지를 제공받아 사용하였다.
2) 『포은선생집』, 용인문화원·포은문화제 추진위원회(도서출판 박이정, 2003), 161-162쪽. 3) 金綺秀, 『日東記游』 2卷, 燕飮, “惟枇杷, 我國所未見, 蓋冬花夏實 性且脆 不可以遠致也, 色淡黃味甘而香, 入口爽然, 一枝衆蔕, 如棠棣之屬” 김기수 저 구지현 역, 『일동기유』수신사기록 번역총서 1, 보고사, 2018. 4) 배원정, 「근대 한국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의 다층적 의미와 기능」, 『조선, 병풍의 나라 2』(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3), 223-226쪽. 5) 차정주, 「장승업의 기명절지화 연구」(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31-38쪽. 6) 목포시청 https://www.mokpo.go.kr/ 7) 김병고, 『목포 예술인들의 빛과 그림자』, 목포투데이, 제477호. 오창석은 중후하면서도 강렬하고 화려한 채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문인화를 주로 그렸는데, 글씨를 쓰는 듯 힘있고 거침없는 운필법을 사용하여 비파를 비롯한 사군자화를 많이 남겼다. 8) 후소회에 대해서는 송미숙, 「후소회에 관한 고찰-1945년 이전을 중심으로」(목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참조. 9) 김용준, 「第九回 美展과 朝鮮畫壇」, 『中外日報』 1930.5.20.~5.28. 10) 『朝鮮美術展覽會圖錄』 도록 9권 11) 나혜석, 「제12회 1933 美展의 印象」, 『매일신보』1933.5.16.~5.21.;『조선미술전람회 기사자료집』 (한국미술연구소편, 미술사논단 별책부록, 1999), 341쪽. 12) 裵相哲, 「朝鮮美展評」, 『朝鮮中央日報』1933.5.18.~5.27. 앞의 책, 347쪽. 13) 天摩山人, 「조선미전 短評」, 『동아일보』1933.5.23.~6.8. 앞의 책, 348-349쪽. 14) 장우성, 『화맥인맥』(컬처북스, 2013), 97-99쪽 참조. 15) 목포화단에 대해서는 최경현,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목포화단 연구」, 『한국근현대미술사학』21호,(근현대미술사학회, 2010), 26-47쪽 참조. 참고문헌 김기수 저 구지현 역, 『일동기유』 수신사기록 번역총서 1, 보고사, 2018.
『경향신문』(1962. 5. 23) 『마산일보』(1959.10.28.) 『조선미술전람회도록』, 조선미술전람회 편, 경성, 1922-1940.최열, 『한국현대대미술의 역사』, 열화당, 2006. 한국미술연구소편, 『조선미술전람회 기사자료집』 미술사논단 별책부록, 한국미술연구소, 1999 신안나·정태영, 『목포의 화맥』, 뉴스투데이, 2006. 배원정, 「근대 한국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의 다층적 의미와 기능」, 『조선, 병풍의 나라 2』,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3. 장우성, 『화맥인맥』, 컬처북스, 2013. 조희성, 「한국 현대 수묵채색화단의 태동」,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차정주, 「장승업의 기명절지화 연구」, 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최경현,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목포화단 연구」, 『한국근현대미술사학』21호, 2010. 목포시청 https://www.mokpo.go.kr/kag/collection# 서울대학교박물관 https://museum.snu.ac.kr/v2/possess/searching/ 오마이뉴스 2007.12.07.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 e뮤지엄 https://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309800100149300000 천안박물관 https://www.cheonan.go.kr/museum.do 글쓴이 김소영 한국학호남진흥원 연구위원 |
|||||||||||||||||||
Copyright(c)2018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All Rights reserved. |
|||||||||||||||||||
| · 우리 원 홈페이지에 ' 회원가입 ' 및 ' 메일링 서비스 신청하기 ' 메뉴를 통하여 신청한 분은 모두 호남학산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호남학산책을 개인 블로그 등에 전재할 경우 반드시 ' 출처 '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
로그인
회원가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