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재발견] 징허게 부잡시럽게 놀았네. 재미났제. 게시기간 : 2026-03-13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6-03-10 11:2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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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을 살펴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는 학문이다. 선조들의 삶은 이야기, 노래, 의례, 놀이, 신앙 등에 전승되는 기억의 역사이다.”
1. 일과 놀이 : 재미 군장(軍裝)을 메고 연병장을 도는 군인과 운동장에서 ‘나 잡아 봐라’라며 뛰어다니는 새내기 커플. 둘 다 비슷한 장소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왜 군인은 생각만 해도 힘들어 보이고, 커플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 보이는 것일까? 명확한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힘듦’과 ‘재미’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재미는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을 이르는 말이다. ‘재미’의 옛말인 ‘미’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라는 한자어 ‘자미(滋味)’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힘듦’과 ‘재미’를 달리 이르면 ‘일’과 ‘놀이’라 할 수 있다.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힘들면 일이고, 재미있으면 놀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일과 놀이를 ‘대가를 받는 여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라고 일을 정의하고 있다. 놀이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이라고 하였다. ‘즐겁게 노는 일’을 ‘놀이’라 하였으니 결국 일과 놀이의 구분 점은 즐거움인 셈이다.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서로 내기’를 하는 ‘노름’이 ‘놀다’에 ‘음’이 붙어 만들어진 말임을 생각해 보면 놀이가 가지고 있는 흥겨움의 에너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중국어 학습에 사용된 《박통사(朴通事)》에 한글로 독음을 단 《번역박통사(飜譯朴通事)》에는 ‘노리’라는 단어가 쓰인 용례가 다음과 같이 보인다.
“8월 보름 추석에 돈을 거둬 달맞이 놀이 하자” 정도로 해석이 기능한다. 이와 같이 명절을 중심으로 주로 놀아지는 놀이를 일상적 시간에 행해지는 놀이와 구별하여 ‘세시놀이’라고 한다. 이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특별한 날이라 여겨지는 시점들, 즉 특정한 시기나 명절을 맞이하여 노는 놀이를 말한다. 명절에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24절기 중 달과 날의 숫자가 동일하게 겹친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 등의 중수명절(重數名節)이 있고, 달의 움직임에서 시작과 끝, 중간의 시간을 강조하는 삭망명절(朔望名節) 등이 있다. 정월 초하루, 정월대보름, 이월 초하루,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와 같은 날들이다. 이러한 명절에 우리 조상은 때에 맞는 놀이를 즐김으로써 시간의 변화와 계절을 느꼈다. 특히나 우리 조상들은 정월대보름과 팔월 보름(추석)에 때에 맞는 세시놀이를 즐기면서 명절을 쇠었다. 2. 당겨야 이기는 놀이 : 줄당기기 정월에 즐기는 대표적인 세시놀이로 줄당기기가 있다. 줄당기기는 마을이나 고을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세시놀이로, 일반적으로 줄다리기라 한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대동놀이이기도 하고,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혼합놀이이기도 하다. 줄당기기는 마을 규모나 참여 인원에 따라 하나의 줄을 양편에서 당기기도 하고, 두 개의 줄을 하나로 합쳐 당기기도 한다. 줄을 하나 사용하는 곳에서는 주로 남녀로 나눠 줄을 당기는데,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여긴다. 그러기에 결혼하지 않은 청년은 당연히 여자 편에 섰고, 때로는 기울어진 놀이판의 아래쪽에 여성 편이 자리하기도 한다. 두 줄을 만들어 사용할 때는 대개 마을을 동서로 나누어 동부는 숫줄을, 서부는 암줄을 만들며 역할을 분담한다. 미리 암줄이 이기는 것으로 승부가 정해지기도 하지만, 막상 줄당기기가 시작되면 서로 이기려 하기에 미리 정해진 승부가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
보통 두 개의 줄을 만들어 줄당기기를 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이 나서서 줄당기기의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정초가 되면 마을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골목길에서 작은 줄다리기를 시작하는데, 이를 계기로 줄다리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편을 가른 다음 짚을 모으고, 작은 줄을 만든다. 그리고 어른들의 줄다리기를 흉내 내어 대장도 정하고, 줄당기기를 하는 등 그럴싸한 줄판을 벌인다. 이를 ‘고샅 줄다리기’ 또는 ‘골목 줄당기기’라 한다.
이렇게 골목 줄다리기가 줄당기기를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뒤이어 어른들이 줄당기기를 준비한다. 마을 안의 일정한 공간을 기준으로 편을 나눈 다음 각각 대장(줄패장)을 세우고, 줄을 만들기 위해 짚을 추렴한다. 짚을 세 갈래로 엮어 줄을 꼬고, 이를 다시 합쳐 더 굵은 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줄(몸줄) 머리 부분에는 둥그런 고를 만든다. 이 고는 줄다리기를 할 때 서로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된다. 암줄의 고를 크게 벌이고, 그 사이로 숫줄의 고를 집어넣은 다음, 비녀목으로 두 줄을 결합한다. 이렇게 하면 두 개의 줄은 서로 연결되고, 이후 서로 자기편으로 줄을 당기는 놀이가 행해진다. 줄 몸통이 너무 굵어 손으로 잡아당기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몸줄에 작은 줄을 달아 이를 당기기도 한다.
광양에서 태어나 30대 초에 구례로 이주한 후 대부분의 삶을 구례에서 보낸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다음과 같이 줄당기기의 모습을 표현했다.
<상원잡영(上元雜咏)>은 매천이 52세가 되던 음력 정월 보름에 창작한 칠언고시 10수의 작품이다. 이 중 하나가 ‘줄당기기〔繂曳〕’이다. 보름날 달이 떠오를 무렵에 북소리에 맞추어 줄당기기를 시작한다. 술내음을 풍기면서 이기기 위해 콧김을 내뿜고, 언 땅을 발로 비벼 구덩이를 파고 버틴다. 한쪽이 끌려가는 것으로 승패가 갈리지만, 승자와 패자가 함께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놀이는 끝난다. 비록 편을 갈라 싸움을 벌이지만, 패를 떠나 함께 어울리고 공동체의 안위를 기원하는 즐거운 놀이인 셈이다. 만들어진 줄 밑에 나무를 덧댄 다음 어깨로 메고 줄을 운반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 끼리 부딪히며 놀이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고싸움놀이’이다. 우리 지역에는 ‘칠석고싸움놀이’, ‘광양용지큰줄다리기’, ‘장흥고싸움’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작(稻作, 벼농사) 문화권에서 널리 행해져 왔다. 용(龍)으로 상징되는 줄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김으로써 복(福)을 가져온다고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마을의 평안과 풍년 등을 말한다. 그러기에 물을 관장한다고 믿는 용(줄)을 당기기가 끝나면 입석(立石)이나 당산나무에 감아두는 것으로 넉넉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를 기원했다.
3. 허락된 불장난 : 쥐불놀이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와 함께 행하는 또 다른 놀이로 쥐불놀이를 들 수 있다. ‘불장난하면 잘 때 이불에 오줌 싼다’라는 어른들의 협박 때문이었는지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필자도 불을 피우고 노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소 마구간에서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불장난 거리라고나 할까? 그런데, 1년 중 유일하게 불장난이 허락된 시간이 있었다. 바로 정월 보름 무렵에 행했던 ‘쥐불놀이’가 그것이다. 쥐불놀이는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놓아 잡초나 잔디 등을 태우는 놀이를 말한다. 농가에서 음력 정월의 첫 자일(子日)에 쥐를 쫓기 위해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놓았다고 하여 쥐불놀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음력 정월 14일이나 보름날 밤에 쥐불놀이를 한다. 불에 잘 타는 싸리나무에 삼대를 섞은 횃대를 만들어 불을 붙여 들고 논밭으로 나가 잡초를 태우며 논다고 하여 ‘횃불놀이’라고도 한다. 황현은 ‘쥐불놀이’를 의미하는 ‘들불[野火]’이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들판을 수놓은 쥐불의 모습을 푸른빛의 귀신불이나 호랑이 불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해충의 피해를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쥐불놀이의 목적도 적어두었다. 전통 시대 쥐불놀이는 청장년층 남자들의 놀이였다. 때로 쥐불놀이는 편싸움으로도 발전하기도 하는데, 편을 갈라 마을별 혹은 지역별로 횃불을 들고 이리저리 뛰면서 경쟁적으로 넓은 지역을 태우거나 상대방의 횃불을 끄기도 했다.
근래에는 이를 ‘불 깡통 돌리기’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은 깡통에 철사로 줄을 만들어 묶은 후 그 깡통 안에 솔가지를 넣어 불을 붙인 후 논둑과 밭둑 등지에 불을 놓았다. 깡통을 이용해 불놀이를 하는 형태를 두고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 쥐불놀이는 달집태우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에 생솔가지와 대나무 등을 이용하여 ‘달집’을 짓고, 달이 떠오를 때 그곳에 불을 놓아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풍속을 말한다. 전남지역에서는 구례·곡성·순천·담양·광양 등 바다와 멀리 떨어진 산간 마을에서 주로 달집태우기 놀이가 행해졌다. 달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집에 들어갈 재료를 구해야 한다. 달집에 들어가는 재료는 크게 솔가지, 대나무, 짚, 이엉 등이다. 재료를 모이면 달집을 만든다. 달집을 만들 자리가 정하고, 솔가지 등의 나뭇단을 맨 밑바닥에 깐다. 나뭇단을 깔 때는 만들 달집의 크기를 고려하여 원 모양으로 두른다. 솔가지 위에 짚을 넣고 그 위로 다시 솔가지를 쌓는 식으로 재료를 쌓아 간다. 어느 정도 솔가지가 쌓이면 그 주위로 기둥 대나무를 세운다. 어느 정도 달집이 다 가릴 정도로 대나무를 세우고 나면, 달집 아래쪽에 사람 키 높이 정도로 이엉을 두른다.
달이 떠오를 시각이 되면 달집에 불을 지르고, 불이 붙으면 달집을 빙 돌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겨우내 아이들이 날리던 연을 달집에 묶어 두고 달집에 불을 붙이면 저절로 연실이 떨어져 날아가게 하기도 했다. 이를 ‘액맥이 연’이라 한다. 때로는 연에 액(厄)이라는 글자를 써서 액을 막는다는 의미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예전에는 달집태우기가 새벽이 지나야 끝났다고 한다. 달집이 타는 동안 각자의 집에서 장만한 음식을 내오거나 마을에서 준비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여흥을 즐겼다. 달집태우기는 풍농을 기원하는 기풍의례(祈豊儀禮)의 성격도 갖는데,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4. 뛰어보세 뛰어나보세 : 강강술래 정월 보름에 행하는 놀이가 줄다리기와 쥐불놀이라면 팔월 보름에 행하는 대표적인 세시놀이는 강강술래이다. 강강술래는 보름날 밤에 여자, 혹은 남녀가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춤추는 놀이이다. 한 사람이 앞소리[先唱]를 부르면, 놀이하는 사람들은 뒷소리[合唱]로 강강술래라는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추고 논다. 정월대보름에 강강술래를 하기도 하지만, 추석 한가위만큼은 아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남자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진도의 강강술래는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 1858~1936)가 지은 《은파유필(恩波濡筆)》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정만조(鄭萬朝)는 궁내부참의관 시절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당하고 이에 관계되었다는 혐의로 1896년 진도 금갑도(金甲島)에 유배되어 1907년까지 12년간 진도에서 생활하였다. 이 기간 진도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책이 《은파유필》이다. ‘이날 저녁에 걸어서 성 위에 이르러 강강술래 노래를 듣고서’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추석날 저녁 성 위에 이르러 강강술래 노래를 듣고 감회를 적은 것이다. 이 시에서 ‘무리 지어 문을 나서 구름머리 쌓는다’라는 부분은 문지기 놀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문지기놀이는 ‘대문열기놀이’라고도 하는데, 두 사람이 문을 만들고 다른 놀이꾼들은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굽힌 상태로 문을 지나가는 놀이이다. 유고집 《무정전고(茂亭全稿)》에도 이 작품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제목이 〈秋夕步至城上聞唱强强來曲〉으로 되어 있다.
진도와 해남지역의 강강술래는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에 연이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했으나 큰 상을 받지 못했지만, 1966년에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받았다. 이때는 원무가 기본이었다. 그러다가 1975년과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부터 강강술래 놀이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민속학자 지춘상(池春相, 1931~2009)이 서남해 강강술래의 노래와 가사를 정리하고, 진도의 예인 박병천(朴秉千, 1933∼2007)이 다양한 놀이 요소를 도입한 ‘해남강강술래’가 1976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강강술래는 춤·노래·놀이의 총체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원무가 주이던 놀이에 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지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쥐새끼놀이, 가마등,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수건돌리기, 발치기, 외따기, 춘향각시놀이 등과 같은 여성들이 하는 놀이를 모두 포함해 종합 놀이 형태로 만들었다.
현재 남녀가 함께 연행하는 강강술래로는 ‘신안 비금도 뜀뛰기 강강술래’가 있다. 진도 노인들도 강강술래는 처녀와 총각들이 함께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는 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름달 아래에서 원무를 추는 강강술래는 달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으며, 노래와 놀이, 춤이 함께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놀이 가운데 하나이다. 강강술래는 현재 진도·해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살아 있는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5. 함께해야 놀이 : 깐부 2021년 9월 17일,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여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시즌1)>이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 선보이면서 지구촌을 강타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 모두 여섯 개의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놀이를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상금을 얻어 삶에 직면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스스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재미가 있어야 할 놀이가 목숨을 건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소개된 놀이만큼 강렬하게 시청자들의 뇌리에 자리한 단어가 있다. 바로 ‘깐부’이다. 깐부는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 등을 뜻 하나는 말이다. 놀이할 때 ‘같은 편’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구슬치기에서 오일남은 구술을 나누어 사용하자며 “우린 깐부잖아. 깐부 사이에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라는 대사를 남긴다. 놀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아울러 오일남은 자신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일남 : 어릴 때 말이야 친구들이랑 뭘 하고 놀아도 재밌었어.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느끼고 싶었어. 관중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말이야.
성기훈 : 그래서 기분이 좋던가? 오일남 : 자넬 왜 살려줬냐고 물었지? 재밌었거든, 자네랑 같이 노는 게. 자네 덕에 기억도 나지 않던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어.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은 정말 오래만이었어. - <오징어 게임> 9화 중에서 -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놀면 무엇을 하든지 재미가 이었다. 놀이는 그런 것이다. 서로 경쟁하고 협동하는 과정에서 놀이의 기쁨이 배가 된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공터도 찾아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뛰어놀라고 만들어 놓은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는 정작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해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게임을 한다. 나름대로 깐부도 있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면을 통해 느끼는 재미가 골목길에 함께 모여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노는 재미와 같을까? 잘 때 이불에 오줌을 싸더라도 부잡시럽게(장난스럽게) 불장난 한번 해보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징허게(몹시) 재미나게(재미있게) 말이다. 도움받은 자료
《飜譯朴通事》
《梅泉集》 박명희·김희태 역해, 『은파유필(恩波濡筆)』(정만조 저), 진도문화원, 도서출판 온샘, 2020. 국가유산청, 『2024년 한국무형유산종합조사 목록수집·현장조사 전통적 놀이 분야 (총론‧전남) 최종보고서Ⅰ』, 2024. 김진욱, 「梅泉 民俗詩 <上元雜咏> 特性 硏究」, 『한국시가문화연구』 26호, 한국시가문화학회, 2010. 박종오, 「송천달집태우기」, 『전라남도의 무형문화재』, 전라남도, 2023. 이은하, 「「오징어 게임」에 드러난 현대사회와 인간에 대한 노자 사상에서의 인간성 회복 방향 모색」, 『놀이치료연구』 29권 3호, 한국아동심리재활학회, 2025. 정형호, 「민속놀이의 유형에 따른 전승 현황과 특징」, 『남도민속연구』 47권, 남도믾속학회, 2023. 지춘상, 「전남의 민속놀이에 관한 조사연구(1)-줄다리기를 중심으로」, 『호남학』 5권, 전ㄴ마대학교호남학연구원, 1973. 나경수, 〈강강술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아시아문화박물관아카이브(http://archive.acc.go.kr) 글쓴이 박종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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